순정만화 주인공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의 손’
순정만화 주인공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의 손’
  • 황인옥
  • 승인 2016.02.15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 유일 드레스인형 작가 하수진

양재 배우다 드레스인형에 마음 뺏겨

교육기관 없어 하루 8~9시간 독학

책·영화 통해 중세 서양복식 섭렵

전과정 수작업…8년간 500여점 제작

외국인도 공방 들어와 “원더풀”

전국서 강의 요청…올해 개인전도
/news/photo/first/201602/img_189159_1.jpg"/news/photo/first/201602/img_189159_1.jpg"
드레스인형 작가 하수진씨.
“제가 취재거리가 될까요?” 인터뷰 시작 전에도,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이야기가 ‘꺼리’가 되는지를 걱정했다.

“대구 유일의 드레스인형 작가로써 충분히 멋지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서야 선홍빛 볼을 반짝이며 “잘 써 달라”며 수줍게 응수해 주었다. 그녀는 드레스인형 작가 하수진(47) 씨다.

첫 질문으로 드레스인형 작가로 살아온 사연을 묻자 하 작가는 “전시를 하지 않았는데 작가라고 해도 될지...”라며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8년 됐다”며 아련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8년 전에 옷 만드는 양재를 배우고 싶어 학원을 다녔어요. 그런 와중에 드레스 인형을 보고 드레스 인형에 빠져들게 됐죠.”

드레스인형은 우아한 드레스 차림을 한 인형을 말한다. 비현실적인 우월한 몸매와 화려한 드레스가 특징이며, 몸과 옷이 하나가 되는 일체형이다. 몸과 드레스를 각각 제작해 몸에 드레스를 입히는 인형과 달리 몸에 직접 드레스를 바느질하는 방식으로 인형을 만든다. 최근에야 한국드레스인형협회, 한국공예협회 산하 드레스분과 등이 설립되고, 드레스인형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을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아직은 미개척 분야다.

하 작가 역시 운명처럼 드레스인형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드레스인형 제작법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공식 교육 기관이 없었기 때문. 양재 학원을 다닌 기술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혼자 터득했다.

“3년 동안은 하루 8~9시간씩 드레스인형 만드는 일에 매달렸어요. 막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드레스인형에 푹 빠진 시간들이었죠. 3년 정도 정신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제 실력도 꽤 괜찮은 수준이 되어 있었어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여성들의 로망이다. 이 로망은 일생에 단 한번 입는 웨딩드레스에 오롯이 투영된다. 웨딩드레스에 보내는 여성들의 찬사와 동경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본능이 깔려 있다. 하 작가도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순정만화에 빠져 살았고, 종이인형을 늘 가지고 놀았어요. 그때 이미 순정만화에서 튀어 나온 듯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 대한 로망이 잠재의식 속에 싹트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가 만드는 드레스 인형은 100% 수작업, 100% 천연재료가 특징이다. 먼저 솜과 천으로 긴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를 한 탱탱한 몸을 만든다. 그런 후에 몸에 드레스를 바느질해 입힌다. 일반적인 인형이 인공머리카락을 사용한 데 비해, 그녀의 인형은 천연 실을 땋아 머리카락을 만든다. 마지막 화룡정점인 얼굴은 손으로 직접 그린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인형들이 다 다릅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표정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다 제각각이죠. 드레스도 마찬가지에요. 천의 조합과 형태에 따라 각양각색이지요.”

지난 8년 동안 그녀의 손에서 세상에 나온 드레스인형은 족히 500여점이 넘는다. 이 인형들에는 동·서양 인형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전통 드레스인형에는 한국의 전통미가, 서양드레스인형에는 서양 고유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그녀는 “한복은 서양 드레스와 달라 상의는 따로 제작해 인형 몸에 입히는 방식을 택했다”며 “팔 부분의 접혀지는 부분과 저고리 하단과 치마 하단이 분리돼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복드레스의 묘미는 저고리와 치마의 색의 조화가 중요하다. 색에 대한 감각이 요구 된다”고 특별할 수밖에 없는 한복드레스인형 제작 과정을 언급했다.

한복은 우리의 전통복식이니 그렇다 치고, 그녀가 만든 서양 드레스인형들은 주로 중세시대 복식과 웨딩드레스가 대부분이다.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서양드레스의 꽃은 중세시대 드레스죠. 제가 알고 있는 드레스라고 해봐야 TV나 영화에서 본 드레스가 전부였기 때문에 중세시대의 서양복식을 공부하기 위해 관련 책들을 섭렵해야 했죠. 영화도 많이 보고, 만화도 보고, 그 시대의 화가들이 남긴 여인들의 초상화도 보고…그러면서 제가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바탕이 쌓였죠.”

웨딩드레스인형은 드레스인형의 정점이다. 드레스가 가지는 우아함의 극치가 웨딩드레스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웨딩드레스인형의 창작 과정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하 작가가 만든 각양각색의 웨딩드레스인형들이 이 점을 증명하고 있다. 드레스의 형태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며, 장식 또한 섬세하기 짝이 없다.

“웨딩드레스인형은 다른 인형보다 제작기간이 훨씬 깁니다. 천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뤄야 하고, 장식의 종류에 따라 제작 기간도 천차만별일 수 있죠. 힘들게 만드는 만큼 완성된 인형을 보면 만족감도 크지요.”

인터뷰 도중, 지나가던 중년 여성이 공방으로 들어와 드레스인형들을 감상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창 안으로 보이는 드레스인형에 마음을 빼앗기며 발길을 멈춘 것. 여인의 얼굴은 이미 저 멀리 소녀 시절로 되돌아 간 듯 아련했다. 하 작가는 중년 여성들이 의외로 드레스인형을 보고 행복해 하고, 흥미를 느낀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라며 “이 진리는 나이를 불문하는 것 같다”고 했다.

“중년과 노년의 어른들이 드레스인형에 더 열광하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애틋함 같은 것이 밀려오죠. 한때 자신의 빛나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이겠죠. 외국인들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주위에 국제학교가 있어 외국인들이 근처를 많이 지나다니는데, 그들도 드레스인형을 보고 공방 문을 스스럼없이 열고 들어와 구경을 하곤 하는데 ‘원더풀’을 외치며 좋아하죠.”

현재 하 작가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공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간간히 취미로 배우는 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다. 제작 과정이 힘들고, 배우는 기간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워낙 이 분야가 미개척 분야라 서울에서도 배우러 오는 분들이 계세요. 강의가 일대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는 없어 소수로만 운영되고 있죠. 드레스인형은 끈기가 있고 흥미가 있어야 할 수 있어요. 하루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 공을 들여야 하지요. 드레스인형이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 수요도 많아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하 작가는 올해 개인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드레스인형 입문 10여 년 만에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채비를 세워두고 있는 것. 또한 작품의 지평도 넓혀볼 생각이다.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의 복식을 드레스인형에 재현하고 다양한 나라의 드레스인형도 제작해 볼 계획이다.

“드레스인형에 빠져 세월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는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드레스인형의 매력을 물었다. 8년을 두문불출하고 드레스인형만 판 끈기 속에 그녀를 사로잡은 매력점이 있었을 터. “드레스인형은 다른 인형과 달리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인형을 만드는 순간에는 모든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직 인형을 만드는 자신만 남게 되죠. 앞으로도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드레스인형을 만들며 살고 싶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