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 승인 2016.02.18 16: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락
수필가
추워서 꼼짝 안하다가 모처럼 햇살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오늘은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지’ 단단히 결심한다. 날씨 탓도 있거니와 괜히 오르막길을 욕심내어 밟고 오르다가 도리어 몸에 무리가 간 적 많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평소 안 가 본 길로 쉬엄쉬엄 달려 보기로 했다. 복잡한 시내를 조금 빠져나가다 보면 이내 산자락 끝 시골 길이다. 최근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라 도시와 농촌이 겹치는 구간이라 건물은 번듯하고 즐비해도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리막을 달릴 때는 마음도 코끝의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등산하고 내려오노라면 주위엔 꼭 먹거리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촌 두부에 막걸리 파전 옻닭 등 허전한 속을 채우기에 그만이다. 저 쪽 계곡 얼음 밑엔 맑은 물이 정적을 깨워주듯 리듬에 신이난다. 옆 도롯가에 차량이 여러 대 주차해 있었는데 그 중 한 대가 뒷등이 훤히 켜져 있다. 나중에 주인이 알면 속상해 할 게 틀림없다. 나는 앞 유리창에 휴대전화를 확인 후 연락해 놓고 막 자전거를 돌리는 순간 그만 자전거와 같이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자세가 엉성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괜찮으세요?” 옆에서 놀던 아이 한 명이 달려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문득 부끄러웠다. 다 큰 사람이 그렇게 맥없이 내동댕이쳐지다니… . 나는 반사적으로 별일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났다.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달렸다. 잠깐 사이였다. 사실 괜찮은 게 아니다. 최근 허리통증으로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데다 그리 넘어졌으니 괜찮을 리가 없다. 하지만 딸아이의 또렷한 물음, 그 한마디가 자꾸 귓전을 맴돈다.

사실 그뿐 아니다. 덜 괜찮은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휴대전화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대충 문자 등을 날렸다가 엉뚱한 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기차 예매를 했노라 믿고 열차를 탔다가 난데없이 옆자리로 옮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력도 안 좋지만 기기 다루는 솜씨가 익숙하지 않아 예매 최종 결재를 빠트린 것이다. 그것도 혼자였으면 덜한데 아내와 모처럼 여행 기분을 내려다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대충하는 습관 탓인데 이젠 그런 예감과 습관이 통할 때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제도 빙판길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머쓱함 등 패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결코, 가벼운 일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누가 지금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면 뒤돌아볼 것도 없이 ‘아니요!’ 라고 대답해야 할 판이다. 사전 완벽하게 준비해도 실수를 하거나 남에게 뒤처지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막연한 생각은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 당당했던 것들도 세월이 지나면 노쇠해져 무력해지게 마련인 것, 남의 도움으로 지금껏 잘 살아왔으니 이제는 작으나마 보탬도 줄 줄 알아야 하리라.

꼭 돈을 써서 베풀어야 값진 일인가. 참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사는데 급급해서 선행을 미뤘다면 이제는 우선 해야겠다.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남이 해놓은 것, 받기만 하고 도움을 주지 못한 게 송구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태어나서 크게 욕먹지 않고 무엇 하나 좋은 결과물을 남기고 간다는 것은 가슴 부푼 일이다. 구태여 연말연시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떠들썩하게 할 게 아니라 평소 남이 알 듯 모를 듯 쓰다 남은 사물을 원위치로 되돌려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산에 오르다가 쓰레기가 버려져 있으면 줍는다든가, 바닷가를 거닐면서 유리조각을 발견하면 내 이웃이 발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청소하고, 길을 가다가 입간판이나 자전거가 넘어져 있으면 바로 세우는 것 등이다. 또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누가 졸고 있으면 깨워서 제때 내리도록 도와주고 노약자가 말을 걸어오면 다정하게 받아주는 소소한 그런 일들 말이다.

정의감에 불타 남 앞에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누가 질서를 헤치거나 언짢은 일이 있으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른 길 가도록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으세요?” 그 딸아이의 다급하면서도 침착한 다가섬이 꽉 닫힌 내 마음을 열어주었다.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해맑은 시선이 절실하다. 낙숫물 같은 신선한 그 한마디가 여직 내 밑바닥을 꿈틀거리게 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