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원석’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다
‘준비된 원석’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다
  • 남승렬
  • 승인 2016.02.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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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안민열 대표

밀양연극제 대학극 계기

대경대 연영과 모여 창단

첫 무대서 ‘낭독연극’ 선보여

햄릿머신·시인k·수업·벽 등

다양한 실험극 잇달아 공연

“인간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담론·자유를 이야기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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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안민열 대표는 실험성 강한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사진은 ‘연극저항집단 백치들’ 안민열 대표가 단원들과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백치들 제공

인터뷰이 컨텍은 뜻밖의 상황에서 의외로 쉽게 이뤄졌다. 최근 대구지역 연극계와 예술계 사람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하던 자리.

“다음 인터뷰 대상자는 누구를 해야할 지 고민이에요. 괜찮은 극단이나 배우 어디 없을까요?”

이 말에 맥주 한모금 들이키던 한 연극인이 답했다. “기자님. 젊은 친구들로 구성된 극단은 어때요?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이라고, 시커먼(하하) 무대에서 대사 하나, 단어 하나 붙들고 몇 시간씩이나 치열하게 토론하고 고민하는 친구들이에요.”

곧바로 극단 대표의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돌렸고 용건을 말한 뒤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극단 ‘연극저항집단 백치들’(백치들) 안민열(31)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성사됐다.

다소 거칠지만 준비된 원석(原石)같은, 지금보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연극인. 대구지역 몇몇 연극계 인사들이 연극에 대한 열정과 실험성으로 무장한 안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난 19일 대구시 남구 대명동 계명대 대명캠퍼스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백치들 안 대표의 손에는 책 한권이 쥐어져 있었다. 책의 제목은 ‘백석우화 그리고 서른세 편의 시’. 월북작가이자 천재시인으로 평가 받는 백석에 대한 희극과 그의 시 서른 세편이 수록된 책이다.

“고대 연극배우는 애초에 시인이었습니다. 희곡작품이 문학이듯, 사실 연극과 문학의 경계는 무의미합니다. 연극이 문학이며 문학이 곧 연극입니다. 이게 제가 요즘 백석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책의 지은이는 극작가 겸 연출가, 시인으로 활동 중인 예술인 이윤택이었다. 이윤택은 안 대표에게 (안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극정신의 본을 보여준 인물’이다. 안 대표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이윤택과 인연을 맺었다. 이윤택은 안 대표에게 연극의 정신과 본질을 알려준 은사다.

◇ 백치들, 실험성으로 무장하다

안 대표를 비롯한 극단 단원들은 스스로 ‘연극저항집단’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자신들을 ‘백치들’이라는 낮은 언어 안에 가뒀다. ‘저항’과 ‘백치’. 이 강렬한 단어 탓에 이 극단은 창단 때부터 지역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실험극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역에서 언제나 실험극에 목말라 하고 그 영역에 도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백치들은 대경대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지난 2007년 밀양연극제 대학극에 함께 참여한 것을 계기로 2012년 6월 정식 창단했다. 현재 안 대표를 비롯해 12명의 단원으로 이뤄진 백치들은 담론이 말살된 시대 속에서 담론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자유를 말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같은 지향점 때문일까. 백치들은 실험성 강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소 난해하지만 인간의 성찰과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아직은 주류가 아니고 비록 변방의 극단이지만 연극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세상에 저항하는 ‘신성한 바보’가 되고 싶어요. 백치는 바로 그 신성한 바보, 배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안 대표가 밝힌, 국내 연극계에 백치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다.

◇ 지역 연극계 신선한 충격 ‘시인k’

백치들은 첫 등장부터가 강렬했다. 2012년 8월 이 극단은 창단기념 공연으로 대구 연극계에선 다소 생소한 ‘낭독연극’을 택했다. 무대에 오른 작품은 ‘시인k’. 연희단거리패 이윤택의 작품 ‘시민k’를 안 대표가 재창작한 작품으로 백치들의 창단 취지를 그대로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예술을 대표하는 시인의 입을 빌어 낭독이라는 형식을 통해 예술과 대중의 소통이 부재한 현실을 꼬집는 내용. 배우들은 무대 위에 올라 동작이나 연극적 장치 없이 말 그대로 희곡작품을 낭독했다. 낭독연극은 서울 대학로 연극가에서는 1990년대부터 활발히 무대에 올려졌지만 대구 연극계에선 낯선 장르였다.

안 대표는 “시인k는 낭독이라는 형식을 빌어 대사가 갖고 있는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대사만으로도 연극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k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리비도 파우스트’, ‘햄릿머신’, ‘버려진 자들’, ‘수업’, ‘벽’ 등 실험성 강하고 사회 부조리를 짚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 왔다.

◇ 윤동주를 닮고 싶은 배우

존경하는 예술인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안 대표는 두 사람을 꼽았다. 그 스스로 자신에게 ‘연기의 본을 보여주신 은사’라고 칭했던 극작가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배우 윤정섭.

이윤택과 관련, 안 대표는 “젊은 연극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며 “특히나 예술과 시대담론이 말살되는 치열했던 시대를 관통해 오시면서 연극의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후배들에게 알려주신 스승님”이라고 했다.

그는 윤정섭에 대해서는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인간애가 많은 배우”라는 표현을 썼다. “동시대를 사는 연극인으로 그를 볼 때면,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참 농밀하다고 느껴집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동료 배우들과 함께 가려는 태도가 그의 연기를 더욱 밀도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내재되고 응집된 파괴력이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 “어떤 예술인으로 진화하고 성장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윤 대표는 시인 ‘윤동주’를 언급했다.

“최후의 저항인이랄까요. 글로써, 시로써 세상에 저항한 시인.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윤동주처럼 세상을 이야기하고 인간을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윤동주는 제가 꿈꾸는 이상입니다.”

이상을 갈구하는 연극인, 다소 거칠지만 준비된 원석은 ‘황홀한 보석’으로 그렇게 진화 중이었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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