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남편 이름으로…평생 모은 12억 기부
그리운 남편 이름으로…평생 모은 12억 기부
  • 손선우
  • 승인 2016.03.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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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남편 잃은 박수년 할머니, 전 재산 쾌척

23살때 전사통지서 받아

보따리 하나 들고 돈벌이

여든에 퇴직 후 농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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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년 할머니는 7일 수성구청을 찾아 평생 모든 돈을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에 맡겼다. 돈을 빼고 나니 할머니의 통장 잔고는 3만3천382원이 남았다.
대구 수성구청 제공
7일 오전 10시 대구 수성구청 2층 구청장실에 박수년(86) 할머니가 들어왔다. 아들의 부축을 받고 온 그는 손가방 안에서 12억 원이 든 통장을 내놓았다.

“한국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뒤 60여 년 동안 모은 돈입니다. 남편의 이름으로 학생들 장학금에 보태 써주세요.”

박 할머니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6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김만용(사망 당시 29세)씨 때문이었다. 그는 “문득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면서 “남편 ‘김만용’의 이름으로 사회에 보람되고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48년 남편과 만나 결혼한 지 5년 만이었다. 박 할머니는 스물한 살에 남편을 전쟁터에 떠나보냈다.

박 할머니의 삶에는 전쟁미망인의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보따리 하나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돈을 벌었고, 서른이 되던 해 대구 수성구 수성동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가정을 꾸리진 않았다. 마흔 살이 되어 보훈청에서 직장을 얻어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일했다. 퇴직한 뒤로는 경산에서 농사를 지었다. 제대로 된 살림살이를 장만하거나 몸치장을 해본 적 없었다. 60여 년 동안 홀로 지내면서 12억 원을 모았다. 억척스럽게 모은 돈이었지만, 박 할머니는 선뜻 내놓았다.

박 할머니는 “후원금을 맡기면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며 “어릴 때 너무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평생 이룬 재산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청 평생교육과 심미정 인재육성팀장은 “할머니가 지난 1월 초에 후원금을 맡기겠다고 하신 뒤, 같은 달 22일 오전에 구청을 찾아오셔서 기탁서를 쓰셨다. ‘손 없는 날’을 골라 기부하신다며 직원들을 배려해주셨다”고 했다.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은 박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이 기탁금을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으로 이름 지어 별도로 관리할 계획이다. 또 범어도서관에 두 분의 이름을 딴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수성구 역사가 시작된 지 36년이 지났는데, 오늘이 가장 의미 있고 뜻깊은 날”이라며 “‘김만용, 박수년’ 두 분의 삶과 용기를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선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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