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때 전사통지서 받아
보따리 하나 들고 돈벌이
여든에 퇴직 후 농사일
“한국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뒤 60여 년 동안 모은 돈입니다. 남편의 이름으로 학생들 장학금에 보태 써주세요.”
박 할머니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6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김만용(사망 당시 29세)씨 때문이었다. 그는 “문득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면서 “남편 ‘김만용’의 이름으로 사회에 보람되고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48년 남편과 만나 결혼한 지 5년 만이었다. 박 할머니는 스물한 살에 남편을 전쟁터에 떠나보냈다.
박 할머니의 삶에는 전쟁미망인의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보따리 하나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돈을 벌었고, 서른이 되던 해 대구 수성구 수성동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가정을 꾸리진 않았다. 마흔 살이 되어 보훈청에서 직장을 얻어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일했다. 퇴직한 뒤로는 경산에서 농사를 지었다. 제대로 된 살림살이를 장만하거나 몸치장을 해본 적 없었다. 60여 년 동안 홀로 지내면서 12억 원을 모았다. 억척스럽게 모은 돈이었지만, 박 할머니는 선뜻 내놓았다.
박 할머니는 “후원금을 맡기면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며 “어릴 때 너무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평생 이룬 재산을 사회에 다시 돌려주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청 평생교육과 심미정 인재육성팀장은 “할머니가 지난 1월 초에 후원금을 맡기겠다고 하신 뒤, 같은 달 22일 오전에 구청을 찾아오셔서 기탁서를 쓰셨다. ‘손 없는 날’을 골라 기부하신다며 직원들을 배려해주셨다”고 했다.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은 박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이 기탁금을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으로 이름 지어 별도로 관리할 계획이다. 또 범어도서관에 두 분의 이름을 딴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수성구 역사가 시작된 지 36년이 지났는데, 오늘이 가장 의미 있고 뜻깊은 날”이라며 “‘김만용, 박수년’ 두 분의 삶과 용기를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선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