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지상(地上)에서 떠난 것들이 내려오고 있다.
사랑하다 죽은 넋들이 내려오고
미워하가 죽은 넋들이 내려온다.
지난 날
바람으로 머리 빗던 거리에
벗겨진 신발을 못 잊어서 오는가.
밤마다 꿈밭에 심어 놓은 꽃나무
지금쯤 피었는지 보고 싶어 오는가.
비가 내린다.
내 생존(生存)이 매달리던 그 밤의
조그마한 반딧불은 어디 갔느냐고
풀잎에 물어 보며 빗물은 떠난다.
한 번 헤어진 사람은 없고
헤어질 사람만 다시 모여 든
여기서는 낯 설어 못 살고 간다.
눈여겨 보아 두라, 서운한 뒷모습,
저 윤회(輪廻)의 회색(灰色) 빛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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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추생. 조선대학교 졸업. 1983년 `시문학’추천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 시분과 회장 역임.
여름 끝에 노염(老炎)을 씻어내고 가을을 불러 앉히려는 비가 자주 내린다. 내리는 것은 단순한 물방울들이 아니라 지상에서 떠난 갖가지 넋들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인가 보다. 이미 헤어진 사람은 오지 않고 다시 헤어질 사람만이 다시 모여 든 지는 낯선 지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찾아 왔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찾아오는 강우(降雨), 이 윤회의 자연법칙을 시인은 내리는 비에서 재발견하고 있다.
이일기(시인 계간`문학예술’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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