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6개국 순회…한국 문화 알린다
유럽 6개국 순회…한국 문화 알린다
  • 황인옥
  • 승인 2016.03.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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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현 다큐멘터리 사진가

아버지 카메라로 ‘사진 매력’에 푹 빠진 소년

사진기자로 경력 쌓으며 국제 수상 휩쓸어

탈북자 기획취재 중 中 억류…14개월 수감

사진기획자로 선회…“상처 치유하는 과정”

5월 5일부터 해외 순회 다큐멘터리 사진展

단순전시 넘어 국가간 교류·워크숍 성사시켜

“한국 사진작가 성장 돕는 기획자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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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현 다큐멘터리 사진 기획자

십중팔구 식물적 관념주의자 아니면 동물적 행동주의자 중 하나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석재현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에 타고 난 재능이 너무 많았다. 관념과 행동 양단을 거침없이 오갔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뉴욕타임즈 프리랜서 사진가, 중국교도소 14개월 억류, 사진전시 및 작품집 전문기획자 등 ‘인생 구비 구비 마다 이처럼 명확한 여정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다채로운 여정을 지나왔다.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때로는 냉철함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사진 인생을 디자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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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photo/first/201603/img_193299_1.jpg'2016 한국대표사진가 사진전/news/photo/first/201603/img_193299_1.jpg' 김중만 전시작
◇ 동유럽 6개국 순환하는 ‘2016 한국대표사진가 사진전’ 기획

드라마틱한 사진가 석재현이 최근 또 하나의 드라마틱한 감동 드라마를 쓰고 있다. 강운구, 故 권태균, 김중만, 이갑철, 조대연, 박종우, 서헌강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7인의 사진가들과 함께 동서유럽 주재 한국문화원을 순회하는 ‘2016 한국대표사진가 사진전’을 기획한 것. 석재현은 이번 전시에 기획에서부터 전시 전반을 총괄한다. 그는 자신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보고 이번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징 코리아(IMAGING KOREA _ Beyond the Land, People and Time)’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사진전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7인의 한국적 풍경과 한국인의 일상,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엄선된 작업을 헝가리, 폴란드, 독일, 스페인, 카자흐스탄, 벨기에 등 동서유럽 6개국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기획이다.

-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이 주목되는데, 이번 전시의 목표는 어디에 두고 있나?

“한국의 전통 모습에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문화와 사회적 현상까지 한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대규모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수를 소개하게 된다. 큰 줄기는 해외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 전시는 어떻게 시작됐나?

“언론인 출신 김재환 주헝가리 문화원장은 사진매체의 특성과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사진전시를 통해서 한국문화를 헝가리에 소개하고자 하였고 한국사진계 원로이신 강운구 선생께 전시 요청을 드리는 가운데 강운구 선생께서 저를 기획자로 추천하셨다.”

- 진행은 순조로웠나?

“사실 처음에는 주헝가리 한국문화원 주최로 소규모로 전시를 할 계획이었는데, 기획안이 오가면서 판이 커졌다.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기회로 삼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현지 갤러리를 찾았고, 헝가리 내셔널 갤러리인 호프 페렌츠 박물관과 공동기획하게 됐다.”

- 6개국 순회전시까지 확대됐다.

“유럽 주재 한국문화원이 2016년 주력사업으로 파이를 키우면서 6개국 순회전으로 확대됐다.”

- 사진전으로만 끝나기에는 아까운 기획으로 보인다.

“전시로 끝나지 않고 전시 국가와의 교류로까지 확대됐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과 공동 주체가 되면서 부다페스트에 있는 유명한 ’로버트 파카 뮤지엄‘과도 워크숍이 성사됐다. 헝가리의 유명 다큐멘터리 사진가와 전시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사진가가 함께 심포지엄을 하고, 포트폴리오 리뷰도 하게 된다.”

-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기획은 처음인가?

“경주 터키 이스탄불 문화엑스포에 사진전시 감독으로 참여해 한국사진을 터키 3개 도시에 순회하며 소개하는 전시를 했었다. 이번 전시는 그 전시를 기본 모토로 작가를 바꿔서 내용을 더 풍성하게 꾸미게 된다.”

- 일종의 문화전령사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접근법이 남다를 것 같다.

“한국을 알리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상업적인 접근보다 사명감으로 접근하고 있다. 전시기획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집을 만드는 일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내 손을 거치고 있다.”

- 전시는 어떻게 구성되나?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의 미학’, ‘사진으로 만나는 한국’ 등을 키워드로 한국을 대표하는 7인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소개한다. 강운구와 권태균 작가는 70-80년대 근대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질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포착하고, 이갑철 작가는 과학, 보편, 객관과는 대치된 에너지, 기(氣) 등을 한국인의 정서로 표현,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과 독특한 사진 미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 한국의 전통 사상과 아름다운 자연도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조대연과 서헌강 작가가 한국인의 사상 및 철학적 기반이 된 불교와 조선시대 궁궐, 왕릉, 종묘 등의 모습을 통한 유교문화의 구체적 재현을 맡고, 김중만 작가는 한국의 일상적 자연 풍경의 재발견을 통한 미적 확장을 담아낸다. 또 박종우 작가는 과거 역사이자 현재에 존재하는 한국의 또 다른 현실인 DMZ의 모습을 소개한다.”

- 전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열리나?

“5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17년 3월까지 11개월 동안 6개국 순회전을 가진다.”

- 이번 해외 순회전의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동서유럽 6개국과의 문화교류 기회를 본격화하고, 현지 유수 기관과의 장기적 협업 기회를 마련하는 기대효과를 가지고 전시를 기획했는데 벌써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시작되고 있다.”

◇ 다큐멘터리 사진기자로 인권의 사각지대를 파헤치다.

석재현은 경일대학교와 미국 오하이오 대학원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후 미시건의 일간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경력을 쌓았다. 귀국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동시에 개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해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해외 사진페스티벌에 초대전시를 가졌다. 개인프로젝트로 진행한 필리핀 여성댄서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2010년과 2011년 태국과 일본에서 국제다큐멘터리 사진상을 수상하는 등 다큐멘터리 사진상을 수상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것은 뉴욕타임즈 한국주재 외신계약 사진기자로 활동할 시기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중국교도소에서 14개월 동안 억류당하는 고초를 겪은 것이다. 과거라고 모두 담담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숙성해도 무뎌지지 않는 기억도 있기 마련. 석재현에게 중국교도소에서 억류된 기억은 세포 마디마디에 파편처럼 박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석재현은 의외로 담담했다. 빛바랜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담담하면서도 관조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뉴욕타임즈 프리랜서 사진기자는 어떻게 시작했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다가 2000년에 프랑스 남부 도시인 ‘페르피냥’에서 열리는 사진 축제에 참여하게 됐다. 그곳에서 뉴욕타임즈 사진편집장을 만난 인연으로 뉴욕타임즈 사진취재 기자를 시작했다.”

- 뉴욕타임즈 프리랜서 사진기자 신분으로 중국교도소에 억류된 사건은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다.

“2003년 1월 18일에 일어났다. 중국에서 탈북자 80여 명을 보트에 태우고 한국과 일본으로 탈출시키려던 암호명 ‘리본’ 계획을 동행 취재하던 중에 중국 공안당국에 적발돼 탈북자 48명과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1년 2개월 동안 감옥에서 억류생활을 했다.”

-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인데 왜 뉴욕 타임즈 기자가 그 일을 하게 됐나?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나 개인 활동가들의 연대모임이 있었지만 그들을 취재하면서 국내에서 활동하던 교회 목사와 전도사들이 중심이 된 ‘탈북자 망명 프로젝트’를 비공식적으로 기획, 실천하는 것을 알고 의무감으로 참여하게 됐다. 마침 뉴욕 타임즈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취재를 많이 하고 있던 터였다.”

- 체포 당시의 상황이 긴박했을 것 같다.

“기획망명이라 규모가 컸다. 하지만 여러 팀이 모여서 하다 보니 계획이 치밀하지 못했고 책임이 불분명했다. 중국을 탈출할 배안에서 믿고 있던 사람이 나오라고 전화를 해서 나가보니 중국 공안 수십 명이 총을 들고 뛰어왔다.”

- 그 상황에서도 정보를 지우기 위해 기지를 발휘했다고 들었다.

“수첩 생각이 났다. 수첩에는 NGO단체의 전화번호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긴박한 순간에도 몸을 숨겨서 그 전화번호를 암호화한 후에 체포됐다. 다행히 NGO단체에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 당시 신혼이라고 들었다. 부인의 고초가 말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1년 2개월 수감 동안 중국의 특별 감시 대상이 돼 수감 생활이 힘들었다. 면회조차 되지 않았다. 재판 결과가 2년 실형이 나왔다. 정말 어렵게 신혼인 아내와 면회가 성사됐는데 그때 아내에게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 다행히 1년 2개월 후 모범수로 풀려났다. 그렇게 되기까지 고초가 대단했을 것이다.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데다 나는 외부에서 물건도 반입되지 않았다. 당시 18kg의 살이 빠졌다.”

-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프리랜서들은 항상 긍정적이다. 나 역시 그곳에 있으면서 사형수들도 만나고 그들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도 지켜봤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내게는 내일이 있다 것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시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준다는 긍정적인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 새로운 시작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 기획자로 변신

한국으로 돌아온 석재현은 뉴욕타임즈 사진기자를 2006년까지 계속하고, 이후 전시기획자로 변신했다. 첫 기획전이 2006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Imaging Asia in Documents’를 기획해 스티브 맥커리를 비롯한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작가의 작품을 국내에 선보였다. 이후 국내외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기획을 해 오고 있다.

- 사진기획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었나?

“중국 억류에서 풀려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또 다시 사진에 안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진기획에 관심이 갔고, 비엔날레 기획을 하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기획자 일이 나한테 잘 맞았다.”

-2014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석을 보여주는 ‘전쟁 속의 여성’ 사진전을 기획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쟁코드는 많이 있어왔다. 하지만 전쟁을 여성의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는 시각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시각은 더 의미가 있었다.”

-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

“자의든 타의든 전쟁에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여성 종군기자의 눈에 비친 전쟁의 모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여성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 특히 주목한 사진이 있었나.

“한국계 미국인 사진가 김영희 씨가 찍은 위안부 박옥년 할머니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박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 젖은 눈가, 꾹 다문 입술 안에 분노와 상처가 절절히 녹아 있는 사진이었다.”

◇ 한국다큐멘터리 사진 성장 이끄는 기획자 되고파

- 사진은 언제 처음 접했나?

“어린 시절 집에 아버지의 카메라가 있었다. 책보는 것보다 카메라를 만지고 사진을 찍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점점 더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집중하게 됐다. 그러면서 열정이 깊어졌고, 대학에서 전공까지 하게 됐다.”

-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내 마음에 드는 사진가들은 모두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었다. 대학시절부터 그런 작가들의 작품집을 수집했다. 대구에서 구하지 못하면 밤새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가서 구해 오고야 말 정도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집착했다.”

- 앞으로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나?

“우리나라는 다큐멘터리 사진 기획자가 많지 않다. 내가 처음 시작하던 2006년에는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외국의 경우 기획자가 작가들과 매칭해 여러 가지 기회들을 만들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결국 쇼 무대는 사진가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성장을 돕는데 사명감을 느낀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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