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생활 20여년…나는 아직도 목 마르다
연기생활 20여년…나는 아직도 목 마르다
  • 남승렬
  • 승인 2016.03.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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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인터뷰-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중학교 2학년 때 연극과 ‘첫 인연’
선생님 운영한 극단 무작정 찾아가
어깨너머로 본 배우들 연기에 관심
부끄럽지 않은 배우로
고인된 선배가 몸 담았던 극단 맡아
일인극 ‘늙은창녀의 노래’ 성장 밑거름
서울-대구 오가며 공부…초심의 자세로
최영주
그 때를 회상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게 보였다. 그리고 어렵게 꺼낸 말…. “선배한테는 물론이고 제 자신한테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말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어는 힘들어하는 이 인터뷰이에게 자꾸 자꾸 되물으며 그 해의 기억을 잔인하게 환기시켰다.

폭설이 이어지던 2014년 2월의 겨울. 2월 18일 오전 대구 연극계에 충격적인 비보(悲報)가 날아든다. 전날인 17일 오후 8시 30분께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환영회가 진행 중이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의 천장이 붕괴되면서 10명이 사망한 가운데 사망자 명단에 대구 출신의 한 연극인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자 지역 연극계는 비탄과 슬픔에 빠졌다.

불과 43세….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젊은 연극인 고(故) 최정운. 그의 황망한 죽음 앞에 지역 연극인들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고인은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활동을 해왔던 연극인이었다. 대구연극협회와 지역 연극계 등에 따르면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편 이상의 연극을 연출했고 특히 2004년 연출한 ‘조통면옥’으로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연극인이었다.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 2000년대 초 대구의 극단 동성로에서 그와 인연을 맺은 배우 최영주(여·38·극단 동성로 대표)씨는 고개를 떨궜다.

최씨는 당시 페이스북에 “...(전략)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나랑 같이 밥 먹고 웃으며 얘기했잖아요. 근데 왜 지금은 아닌거에요. 선배, 선배... 저 어쩌지요? 아무것도 못하겠어요”라고 쓰며 애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사고가 나기 며칠 전 그와 함께한 즐거웠던 점심식사는 마치 슬픈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 해 겨울의 시린 눈발처럼 그녀 가슴에 아리게 남았다. 그토록 따랐던 선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슬럼프와 정체기가 이어졌지만 최씨는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연극의 길에서 방황하고 힘들어할 때면 늘 바른 제안을 해주시고 제가 가야할 방향을 가르쳐 주시던 선배였어요. 묵묵히 지켜주던 버팀목과 같던 선배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그 해, 2014년은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지난해 초 선배가 한 때 대표로 있던 극단 동성로의 대표직을 제가 맡게 되면서 선배 앞에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청년이란 이름에 걸맞게 더욱 열정적으로…”

선배 앞에 부끄럽지 않은 배우로 서겠다는 그의 성심(誠心)이 통했던 것일까. 배우 최영주는 지난해 11월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청년연극인상’ 대구지역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한국연극협회는 매년 제작과 극작·연출·기획·연기·무대예술 등 연극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신진 연극인 20명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말그대로 한국연극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연극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지난해 3회째를 맞았다.

“지금도 연습실 한편에 있는 대한민국 청년연극인상 상패의 ‘청년’이라는 말을 볼 때면 항상 새로운 자극을 받아요. 특히 청년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와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다짐하곤 해요. 특히나 이제 갓 연기를 배우려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문득 문득 ‘아! 나도 이 아이들과 같던 첫 시작의 시절이 있었지’라고 생각하며 저를 더욱 더 채찍질하게 돼요. 청년의 열정은 항상 스스로를 발전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전과 한울림, 엑터스토리, 고도5층, 예전, 빈티지 등 소극장이 밀집한 대구시 남구 대명동 대명공연문화거리에 자리한 그의 연기 연습실에서 최근 만난 배우 최영주는 개인레슨을 막 끝낸 직후였다. 그의 연습실에는 배우를 꿈꾸고 연기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있다. 그날 역시 그는 연기자를 꿈꾸는 여학생과 수업을 진행하며 시선 처리와 동선 등을 지도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오히려 배운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서툴고 미숙하지만 ‘미완의 대기’로 잠재력이 풍부한 그들(학생)의 열정을 볼 때면 저 역시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절로 든다”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학생들을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최영주는 대구 출신의 걸그룹인 ATT의 멤버 세비를 비롯해 연기자를 꿈꾸는 다수의 연기 지망생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배우 최영주와 연극의 첫 인연은 중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운영하는 극단을 무작정 찾아가 배우들의 연기를 어깨너머로 지켜보다 연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선 시점은 2000년대 초반. 당시 문창성 전 대구시립극단 감독이 운영 중이던 극단 동성로에 단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부터다. 이 극단에서 그녀는 고 최정운, 현재 대구시립극단 단원인 배우 김효숙, 배우 김민정 등과 인연을 맺었다.

◇잊을 수 없는 작품…‘늙은 창녀의 노래’·‘행복한가’

20년 가까운 연기 활동을 하면서 그녀는 그동안 ‘결혼한 여자, 결혼 안한 여자’, ‘굳세어라 금순아’, ‘단발령’, ‘사라진 영웅’, ‘하늘만큼 먼 나라’,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왕초품바’, ‘다금바리’, ‘늙은 창녀의 노래’, ‘행복한가(家)’, ‘잔니스키키’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해에는 대구 수성못을 배경으로 촬영된 장편영화 ‘수성못’에 조연으로 출연, 제작에 동참했다.

최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늙은 창녀의 노래’, ‘행복한가(家)’, ‘결혼한 여자, 결혼 안한 여자’ 등 세 작품을 꼽았다. 그는 특히 일인극인 ‘늙은 창녀의 노래’와 지난해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수상작인 ‘행복한가(家)’를 언급했다.

늙은 창녀의 노래는 소설가이자 시인인 작가 송기원이 전남 목포에서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최씨는 이 작품에서의 연기를 통해, 비록 소외된 삶을 살지만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순수했던 여성의 한(恨)과 슬픔의 정서를 원작의 감동 그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복한가(家)는 지난해 7~8월 개최된 거창국제연극제 국내 경연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빚을 지고 자살을 선택하는 한 가장과 그의 죽음에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빚 독촉에 시달리는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물이다. 작품에서 최영주는 아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늙은 창녀의 노래는 처음 도전하는 일인극이었고 양희경 선생님이 출연했던 작품이라 부담감이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끝내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우로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행복한가의 경우는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소중해서 애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대사 한 마디 한마디의 의미와 감정선을 안건우 연출가와 배우들이 하나 하나 고민하면서 짚어낸 연극이기 때문에 자식 낳는 심정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그 노력의 결과가 거창국제연극제 대상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초심을 잃지 않는 배우로 남고 싶어”

배우 최영주는 다시 ‘초심’을 생각한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가짐과 열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올해 3월에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연극예술학과 연극예술전공 과정에 진학해 연극·뮤지컬 연출과 무대 디자인, 연극이론 및 비평, 드라마트루기, 희곡론, 연극치료 등 관련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 당일 KTX를 타고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강행군이지만 배움의 열정 앞에 피로는 금새 달아난다고….

“서울에서의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다시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넘어요. 몸이 전혀 피곤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오늘의 이 수고와 고생이 언젠가는 연극 하는 사람으로서의 저, 연기자 최영주의 몸과 마음을 더욱 살찌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이 믿음이 피로한 생활 속 저를 지탱하는 힘입니다.”(웃음)

“초심을 지키는 배우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 질문에 그는 김은환 대구시립극단 전 수석단원을 꼽았다.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란다.

“제 스무살 때 처음 함께 연기했던 선배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연극을 바라보는 시각과 애정이 한결같고 남다르신 분 같아요. 배우는 늘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선배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꾸준한 연기로 끝까지 갈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는 배우로 남는다는 것. 먼저 떠나신 최정운 선배도 저의 그런 모습을 기대할 것이라고 믿어요.”

그는 올해 계획을 언급하며 극단 동성로의 활성화를 제일 먼저 꼽았다. 지역의 여느 민간 극단이 그러하듯 극단 동성로도 영화나 대형 뮤지컬 등에 밀려 2010년대 초중반 접어들어 다소 침체의 길을 걸은 것도 사실. 극단 대표로서 배우 최영주는 올해 신입 단원 모집과 워크숍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실험적인 창작극을 2편 이상 무대에 올려 침체된 극단에 활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는 12~17일 열리는 제33회 대구연극제에도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참여하기로 해 학업과 연습을 병행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극단 원각사의 대구연극제 경연 참가작품 ‘우체부가 된 천사’에 출연하는 것. 이 작품은 대구시립극단 단원인 배우 김미화가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최씨는 대구지역 연극 무대를 지키며 내공을 쌓아온 배우 김은환, 서영삼, 강석호, 이광희, 김민정 등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우체부가 된 천사는 오는 17일(일) 오후 4시와 7시 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두차례 공연된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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