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에 목마른 당신과 울고 웃으며 함께 한 20년
인디음악에 목마른 당신과 울고 웃으며 함께 한 20년
  • 정민지
  • 승인 2016.04.1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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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유일 인디음악 전문공연장 ‘클럽 헤비’

밴드 애호가 모이던 아지트서 공연중심 클럽으로 발전

1996년 첫공연 이후 20주년 인디씬 정리앨범 이달말 발매

‘헤비 누나’ 신은숙 대표, 클럽 일 도와주며 기획 발들여

전방위 문화개척…"좋은 밴드들 찾아주면 그것으로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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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헤비의 신은숙 대표는 자신의 사진은 조그맣게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20년간 클럽 헤비를 운영한 신 대표는 자신보다 공간을 더 아끼는 것 같았다. 정민지기자

지하에 있는 공연장을 가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특유의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면 공간이 간직한 기억 한 조각을 맛본 듯한, 그런 느낌을.

보도블럭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이 아플 정도로 맑은 날, 인디음악 전문공연장 클럽 헤비(HEAVY)를 찾았다. 어둔 공연장에 눈이 적응하기 전 그 특유의 공기가 먼저 낯선 이를 맞았다. 그리고 그곳에 신은숙 대표가 있었다.

1996년 첫 공연을 시작해 대구 유일 인디음악 공연장으로 대구인디씬을 이끌어온 클럽 헤비. 이달 말 20주년 기념 앨범을 내고 다음달 중순께 앨범발매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모여든 밴드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신 대표와 짧은 인터뷰를 나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매우 신중하고 배려심과 따뜻함을 가졌지만 절대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나이나 좋아하는 음악 등의 사적인 질문도 사절했다. 까다로운 사람인가 싶었지만 저녁 공연을 위해 온 밴드에게 인터뷰 내내 보여준 적 없는 따스한 미소와 말투로 말을 걸었다. 10년만에 만난 밴드 관계자와 더없이 반갑게 인사했다.

함께 나눈 이야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어쩐지 그를 조금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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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헤비 벽면 빼곡하게 붙어있는 인디밴드 목록들.
◇인디음악과 함께 한 클럽 헤비 20년

“실은 20주년을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꼿꼿이 20년 한 우물을 판 사람이 하는 말 치고는 지나치게 간결했다. 신은숙 클럽 헤비 대표는 ‘헤비누나’로 통한다. 1990년대 초반 서울 홍대를 중심으로 밴드 공연장이 하나둘 생겨났고 전국 각지의 록 음악 매니아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를 찾았다. 1994년 클럽 헤비도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당시 클럽 운영자가 지은 이름이 지금도 그대로다. 아마 헤비메탈 음악에서 따온 ‘헤비’일 것이라 신 대표는 전했다.

“2003년에 이곳(대명동)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바꿀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고 바꾸기보다는 이어가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고 공연 영상도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음악 잡지를 읽고 공연장을 찾아가고 음반을 사야만 ‘취향’을 완성시킬 수 있던 시절, 밴드 음악에 빠져있던 신 대표는 대구에도 클럽이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연한 듯 클럽 헤비를 찾았다. 비슷한 목마름을 느꼈던 이들이 헤비를 채웠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아지트, 노는 공간이었다. 매일 헤비에 갔고 자연스럽게 일을 돕게 됐다. 1996년부터 공연 기획도 하게 됐고 본격 공연중심 클럽으로 바뀌었다.”

클럽이 문을 연 시점이 아니라 공연을 시작한 때를 기준으로 20주년을 기념하는 셈이다. 20년의 시간을 한명의 인물에게 듣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 수많은 기억이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 그렇게 스무해가 지났을 터였다. 오히려 그때 그때 클럽 헤비를 찾았던 이들로부터 각자의 기억, 추억을 하나씩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그때는 음악에 대한 갈증이 심해 간절한 마음으로 헤비를 찾았죠’ ‘정말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대구에서 직접 공연을 보게 될 줄이야’ ‘혼자 보러간 공연이었는데 헤비누나가 챙겨줘서 친해졌어요’ 등등. 지역에서 밴드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클럽 헤비와 신 대표에 대한 기억 하나씩은 가졌을 것이기에.

“17주년 기념 음반을 냈었는데 이번 20주년도 주변 밴드와 지인들이 음반을 내야한다고 설득해 추진하게 됐다. 경비 등 지치는 부분들 때문에 걱정도 있었다.”

앨범은 4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참여팀 중에는 지역 밴드들은 물론 부산 대전 등 클럽 헤비와 인연을 맺은 타지역 팀들도 있다. 한 클럽의 이름으로 내는 단순한 컴필레이션 앨범이 아니라 대구인디씬 20주년을 정리하는 앨범을 구상하고 있다.

앨범 제작비는 2차에 걸친 소셜펀딩을 통해 모아졌다. 목표치를 넘겨 모금돼 500장의 앨범 제작과 현수막, 티켓 제작 등 홍보비용, 공연 후 DVD발매 등에 활용한다.

“하기로 했으니 대구 인디락씬의 파워를 한번 모아보자는 의미를 담아 진행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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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클럽 헤비가 20주년을 맞았다. 인디음악 전문공연장으로 수많은 밴드가 헤비를 거쳐갔다.
클럽헤비 제공
◇좋은 공연이 헤비의 존재 이유

클럽 헤비 20주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자연스레 자연인 신은숙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방어벽은 단단했다. 클럽 헤비 여집합에 속한 신 대표의 사적 영역은 밝히고 싶지 않단다. 20년 동안 변해온 음악 취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양한 밴드들과 팬들이 클럽 헤비를 찾는데 있어 운영자의 취향은 중요치 않다는 것.

“모든 밴드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잘하는 밴드는 잘하는대로, 실력이 모자라도 열정이 가득한 밴드는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으로 좋다.”

클럽을 맡고 신 대표는 공연 기획을 넘어 락 페스티벌 개최, 전국 버스투어, 음반 레이블 설립, 독립영화 상영 등 전방위적 문화 개척자로 활약했다. 다수가 즐기는 주류 문화는 아니지만 간절함이 더 큰 인디문화 팬들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클럽 헤비를 중심으로 각종 소모임들이 만들어졌고 신 대표 표현을 빌자면, ‘저절로’ 운영되고 있다. 혼자 온 친구들을 적절한 소모임에 소개시켜주는 것만으로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마음맞는 이들을 만나 함께 공연을 보러오고 있다.

“예전에는 밴드들이 설 곳이 헤비밖에 없을 때라 책임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좋아서 한 일들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의 99%였던 헤비가 조금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대구에도 여러 클럽들이 생겨났다. 공연만을 위한 헤비같은 곳도 있는가 하면 갤러리, 카페, 음식점, 주점 등과 겸업하면서 공연을 하는 공간이 늘었다. 전국 투어를 하는 밴드들도 많아지고 인디음악 소비층도 확장되는 추세다. 미성년자 출입이 가능한 헤비에는 초등학생부터 40~50대까지 관객 스펙트럼이 넓다.

“기획·정기 공연을 꾸준히 운영하는 곳은 여전히 헤비가 유일하지만 여러 문화공간에서 공연기획을 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이 높아졌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따라 골라서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헤비도 하고 싶은 밴드의 공연만 해도 돼 편하다.”

클럽 헤비는 금·토·일요일 공연을 제외한 평일에는 문을 닫는다. 평일 신 대표는 무엇을 할까 궁금하면서도 어차피 답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일러스트를 배우거나 개인적인 업무를 본다는 짧은 답변을 듣기는 했다. 현대인의 불안 요소 1위인 ‘노후’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며 그제서야 얼굴에 웃음기가 맺혔다.

“나도 노후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살았다는 점에 만족하지만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헤비를 지금처럼 무난하게 유지하고 싶다.”

신 대표는 “좋은 밴드들이 클럽 헤비를 찾는 것, 그것이 헤비의 존재 이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즐겁게 놀다가는 공연장이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이날 오후에 공연할 밴드들이 속속 클럽 헤비에 들어왔다. “일찍 왔네.” 이 짧은 말 한마디에 묻은 따뜻함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동안 공연했던 수많은 밴드들과, 설렘을 안고 두근두근 클럽 헤비의 계단을 내려 왔던 음악 팬들이 느꼈을 그 따뜻함. 헤비에 가면 헤비누나가 있다는 그 안도감.

공연 준비로 바쁠 신 대표를 위해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오후 3시 일상의 거리로 들어섰다. 한낮에 꾼 꿈처럼 잠시 멍해졌다. 혹시나 뒤돌아봤다. 클럽 헤비로 가는 계단은 그대로였고,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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