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 승인 2016.05.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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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중리초등학교장
내일은 94회 어린이날이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는 민들레가 샛노랗게 햇빛을 받고 반짝거렸다. 꽃씨가 간혹 바람에 흩날리며 멀리멀리 날아가기도 하였다.

잦은 비로 ‘강아지똥’이 온몸에 비를 맞아 잘디잘게 부서지고 땅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 들었기 때문일까? 민들레의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는듯하다. 강아지똥의 동화작가 권정생은 원고료와 인세가 모여 60만원이 되자 빌뱅이 언덕에 집을 지었다. 동네 청년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힘을 보태고 정성을 쏟아서 다섯 평짜리 토담집을 지었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주었다. 지금부터 33년 전인 1983년도 일이었다.

마을과 떨어져 있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집이지만 권정생은 모든 게 호젓하고 좋았다. 생애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만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톳째비(도깨비)가 나와서 같이 살 정도로 토담집 주변에는 온갖 야생화들이며 풀벌레들과 수목들이 빙 둘러쳐져 있었고 마당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이다. 내가 두 그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말라 고통을 겪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작가 권정생은 항상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2007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원고료와 인세로 모은 돈이 통장에는 10억원이 넘었다. 전 재산을 모두 어린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통장에 있는 돈을 북쪽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라고 유언장을 썼다. 권정생은 아픈 몸을 이끌고 힘들게 글을 썼다. ‘강아지똥’, ‘몽실 언니’, ‘무명저고리와 엄마’ 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말없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 빌뱅이 언덕 아래 토담집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돈으로 살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 오롯이 숨어 있다. ‘내 몫 이상’을 쓰지 않았던 작가 권정생의 전설과 같은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당 한 구석의 재래식 변소가 아직도 주인을 반기듯 맞이하는 곳에 서면 누구나 숙연해지고 부끄러워진다. 또한 굴속같이 어두컴컴한 부엌문을 열면 마치 톳째비라도 나올 듯 등골이 오싹하고 전율이 느껴진다. 그것은 나 자신 진솔하게 살아오지 못한데 대한 회한과 너무도 많은 것을 탐하는 세상살이의 진부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죄스런 마음 때문이리라.

“작은 세상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고 동화작가 권정생은 말하였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하고 큰 것을 갖고자하는 욕심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많은 것들을 탐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욕망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은 항상 무엇인가를 부족하다는 생각과 느낌을 가지는 마음이다.

그래서 욕심이 아주 많은 것을 이르는 말에 ‘욕심은 부엉이 같다’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부엉이는 둥지에 먹을 것을 많이 모아두는 습성이 있다. 무엇이든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갖추어 놓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경행록에도 ‘넉넉함을 알면 가히 즐거울 것이요. 욕심이 많으면 근심이 있느니라’하였다. 잘사는 사람들의 처지는 항상 큰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 때문에 근심을 일으키고 결국 패가망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러는 것이다.

간디는 런던에서 열리는 원탁회의에 가기 위해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는 평판, 이것뿐이오”라고 했다. 간디가 가진 물건은 작은 세상 작은 대로 아름답다.

‘무소유’에서 법정스님도 간디의 이 구절을 읽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스님 역시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고,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갈 것이라 했다.

권정생은 마지막 유언장에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요’라고 썼다. 슬레이트 지붕의 다섯 평짜리 토담집의 작은 세상에서 작은 대로 아름답게 살다간 권정생의 삶은 진실로 우리네 삶의 귀감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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