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오월에
푸른 오월에
  • 승인 2016.05.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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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계절의 여왕답게 곳곳에 천연색 꽃 잔치를 벌이고 푸름이 온 천지를 덮고 있다. 때맞춰 고장마다 특색 있는 행사를 개최하여 볼 것 많고 갈 곳도 많아 행복하기 그지없는 오월이다. 덩달아 좇아가려니 마음도 들뜬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듯, 한 박자 쉬어가는 건 어떨까. 난 이럴 때일수록 인적 드문 적요한 곳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가까운 고찰이나 생가를 방문해서 어슬렁거리며 뒤뜰을 둘러보고 싶다. 남들이 그냥 지나치고 빛이 들지 않는 구석을 살피는 버릇은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그곳엔 모름지기 알 수 없는 사상이나 철학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 옆만 스쳐도 편안해져 옴을 느낀다. 눈길을 잘 받지 못한 수목이며 벽화, 도구들이 마음을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유의 취향 탓이리라.

거기엔 옛사람의 지고한 삶의 흔적, 애환 등이 스며있다. 어머니께서 보름달 감나무 아래 정한 수 한 사발 떠놓고 기원을 했던 간절함이 남아있을 것이고 이름 모를 들풀이 소리 없이 피었다 지기도 하는 곳, 또 사철 사용되는 도구를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소담스런 인연들이 슬며시 나를 잡아끄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살짝 손을 얹으면 감추어졌던 신성함이 안개꽃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번들대는 앞마루며 뜰에서는 느끼지 못할 향취나 고매함, 아마도 그 뒤 뜨락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으리라.

얼마 전 찾은 한 사찰은 평소 그려왔던 풍광이 아니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입구부터 몰라보게 정비를 해 놓았다. 계단이며 지붕 그리고 크게 비석을 세워 현대적 감각으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옛날 고색창연한 가람의 기운은 간데없었다. 산신각 오르는 길에 옹기종기 피던 야생화며 아담한 돌담이 사라지고 청솔 무성했던 산등성을 깎아 일대를 반듯하게 꾸며 놓았다. 건너 고즈넉해 보였던 찻집도 대웅전 아래로 옮겨 눈길을 돌리게 한다. 공사가 끝나지 않는 터라 어수선함만 안고 돌아왔다.

꾸며놓은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강제적인 그런 모습엔 이내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인 것, 남이 알아주거나 않거나 참됨을 실천하는 모습이 빛난다. 매년 익명을 고집하며 선행을 베푸는 자는 어떤 사연을 차치하고라도 얼마나 고고한가. 평생 고생하여 번 자산을 언뜻 사회에 내놓는 자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다소 뒷전에 머물지라도 거부함이 없다. 오히려 남을 헤집고 앞서 나가기를 주저한다. 말보다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안도하며 세상 살만하다고 거듭 고마워할 뿐이다.

요즘 들어 가요프로를 즐겨 본다. 성인가요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방안이다. 갈수록 해이해져 가는 사고에 일침을 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 가수가 출연하여 노래를 부를 때 악단과 합창단 무용단 등 수십 명이 합연하여서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얼마만큼 호흡이 잘 맞는가에 따라 그 감동의 폭이 커진다. 주인공인 가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뒤편에 있다. 그들은 누가 관심 있게 봐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절대 자기 역할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동작 하나, 음정 한 군데 틀리면 관객은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비록 무명가수가 나와 좀 밋밋해도 뒤에서 열연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갈채를 보내게 된다.

많은 이가 잘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주인공만 되려 한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서로 대표를 하려고 난리다. 자기가 나서야 잘되고 변화할 수 있다며 적임자임을 외쳐댄다. 고의로 체납하는 집주인 때문에 전세금마저 날리는 서민의 억울한 소식을 접하고 할 말을 잊는다. 내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 철없던 아이도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 어른이 되듯, 음지도 태양의 이동으로 양지로 변하지 않던가. 뒤처져 남을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 그게 더 보람 있는 삶 아닐런가.

오월, 가정의 달이다. 신은 동등하게 소생할 멋진 기회를 주고 있다. 이 출발 선상에서 마음껏 자연을 누리라고 소리친다. 비록 무대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건물 뒤 뜨락 응달에서 웅크려 있다 한들 언젠가 빛을 발할 한 구성원이라는 걸 알고 있음이다. 이 모두에 도타운 시선은 무쇠도 녹이는 다스함이 있다. 저 한껏 물오른 수목도 매력을 발산하는 이때, 우리도 어우러져 목청껏 노래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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