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재상론(宰相論)
<대구논단> 재상론(宰相論)
  • 승인 2009.10.1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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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재상이란 전근대시대 중앙의 최고 정치책임자를 부르던 말이다. 어원으로 보면 `재’는 요리사, `상’은 보행을 돕는 자를 뜻하며, 모두 노예의 뜻을 지닌다. 비슷한 말로 `신하(臣下)’라는 말로, `신’은 무릎을 꿇은 모양에서 온 것으로 `무릎을 꿇은 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재상이란 용어는 진(秦)나라 이후 최고 행정책임자를 일컫는 말로 전용되었다. 진과 한(漢)에서는 3공(三公)을, 후한(後漢)에서는 사도(司徒)·태위(太尉)·사공(司空)·승상(丞相) 등을 재상이라 불렀다. 비슷한 말로 총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영향으로 이 명칭을 사용하였다. 백제의 6좌평, 신라의 상대등·시중이 있다. 고려시대는 종2품 이상의 관직자 중에서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과 중추원의 추신(樞臣)을, 조선시대는 2품 이상의 관직자로 정승·판서에 해당하는 공경(公卿)이 해당된다. 특히 그 중에서 정1품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재상 중의 재상이라 한다.

그 중에서 영의정이란 관직명은 한말 서구의 제도를 모방하면서 총리대신, 이후 공화국을 지향하면서 국무총리라 불렀다. 오늘날 국무총리는 조선시대 영의정에 해당되며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총리는 정운찬까지 40명이며,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4개월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할까? 조선시대 학자 최한기는 `인정(人政)’ 재상(宰相)의 선거에서 “재상을 선거하는 데는 마땅히 향신(鄕紳)의 중망(衆望)으로 할 것이지, 자격이나 계급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다만 그의 기량을 미루어 내외의 직임에 시험해서 공적을 드러나게 하고 민간에서 명망을 길러 도덕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한 조선시대 대학자 삼봉 정도전은 `경제문감(經濟文鑑)’ 재상의 직(宰相之職)에서 재상의 재목을 “재상의 일을 맡기는 데는 반드시 재상의 재목이 있으니, 그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혹은 유약(柔弱)하여 제압되기 쉬우며, 혹은 아첨하고 간사한 자가 아첨하여 나오거나, 혹은 외척과 결탁하고, 혹은 중인(中人 : 환관이나 궁녀)에게 붙는다.

뭇사람이 우러러보는 지위에 거하고 치도(治道)를 논하는 직책에 처하면, 간사한 자는 권세를 부려 복록을 지으며, 벼슬을 팔고 법을 팔아 천하를 어지럽게 하며, 유약한 자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따르기만 하고 입을 다물어 말을 아니 하여 은총만을 굳히매, 크게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작게는 기강을 무너뜨리니, 재상의 임무를 어찌 가벼이 주겠는가! 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총재(오늘날 국무총리) 선택의 중요성을 “또 인주(人主 : 오늘날 대통령)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총재는 인주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인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지경에 들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학자 진서산(眞西山) 역시 재상의 선택을 “자신을 바르게 하고서 인군을 바르게 하며, 인재를 잘 선택하고,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는 왕이 재상을 고를 때는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할 것이 예측되는 강직한 신하를 택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얼마 전 새 국무총리가 임명되었다. 예상 밖이라고 하면서도 할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후보자의 잘못들이 드러나면서 인준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총리 임명 이후에도 “잘못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라고 하여 `양파 총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은 국정 감사 이후 해임건의안 발의를 고민할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의 지나온 경력이 나라에 더 큰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아마 야당의 공세는 “민주당과 연애하고, 한나라당과 결혼했다.”라는 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요즘 세태가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고는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취임 전부터 이전 자신의 주장과 차이를 보이는 4대강과 세종시 발언이 있었다. 이것은 소신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말대로 “잘못된 것에 대하여서는 반대를 분명히 하겠다.”라는 소신의 실행이다. 즉 무엇보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가이다.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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