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삶
예술가와 삶
  • 승인 2016.06.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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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주 미학·미술평론가
작가로 산다는 것,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예술가는 경제를 중시하는 시대에 살면서 경제적 관심으로부터 초연하기를 요구받는 사람이다. 이런 기대로 사람들은 그들의 몸에 체화된 역량, 또는 그 역량을 기르기 위한 수많은 시간과 노고를 한 끼의 식사로 셈하거나 가벼운 찬사로 대신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의 순수성을 지켜주기나 하는 듯이 말이다.

전경린은 자신의 산문집 <붉은 리본>에서 소설이란 새로운 삶의 자리를 하나 창조해내는 일, 인생에 새로운 길을 하나 틔우는 일, 여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인물 하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 또는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의 비전을 보기도 하고 보이지 않던 세계, 말해지지 않은 세계의 속살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단지 하나의 장식품이나 자본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삶과 유리될 수 없다. 그렇다고 삶, 그것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예술이 자리하는 긴장 또는 사이의 자리일지 모른다.

작가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돌려 세운 작가가 있다. 온 카와라(1932-2014)는 1966년 1월 4일 그의 삶과 함께 하게 된 <오늘 연작 The Today series>을 시작한다.

날짜그림 혹은 데이트 페인팅Date Painting이라 불린 이 작업은 그의 죽음으로 끝맺음하게 된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이십 사 시간 안에 완성된 것만을 작품으로 남기고 자정을 넘긴 날짜그림은 파기하기, 하루에 세 개 이상 그리지 않기, 세계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닐 때 머무는 곳의 시간 표기법 따르기 등의 원칙에 따라 그는 작업을 했다.

그가 작품을 구상하여 첫 번째 날짜그림을 완성한 이래 죽음에 이르기까지 48여년에 걸쳐 삼천 여 점의 날짜 그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연작 <오늘>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각각의 그림은 단색으로 다섯 번 칠한 바탕에 흰색으로 그날그날의 날짜를 칠한 것이 전부다.

바탕색을 달리하거나 그가 머무는 지역의 날짜 표기법에 따른 변화, 또는 캔버스의 크기를 달리하지만 화면의 중앙에 위치한 날짜와 단색 바탕이라는 구도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붓 터치나 미묘한 색감에 의한 작가의 자신의 개성 드러내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 뒷면에 또는 작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마분지 상자 안쪽에 붙여 놓은 그날의 신문에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이 있다. 그것은 붓 터치처럼 작가의 흔적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하루를, 온 카와라씨의 하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일어나고, 걷고, 신문을 오리고 스크랩하고, 사람을 만나고, 날짜 그림을 그린다.

1968년 남미를 여행하며 실행한 프로젝트에서 그는 ‘나는 일어났다’는 메시지와 함께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고무인으로 찍어 엽서를 보낸다. 1970년부터는 ‘나는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보로 보내기 시작한다.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서 읽고, 읽은 기사를 스크랩했다. 이 후 <오늘>연작을 제작한다. 그리고 지도 위에 하루 동안 그가 간 경로를 표시하고,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이것이 <나는 갔다>, <나는 만났다>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예술가의 삶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하루는 보는 이에게 흥밋거리 일 수 있다. 그러나 온 카와라의 작품이 단순히 삶의 기록에 그친 것은 아니다.

그는 숫자, 단어, 기호뿐만 아니라 지도, 엽서, 전보 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작품을 했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보여 주기 위해 그는 기존의 구상적 작업에서 벗어났다.

개념미술가로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려내기 위해 다양한 표현 매체를 미술언어로 받아 들였고 자신의 삶을 그 과정 속에 두었다.

오늘을 쌓아 만든 시간은 죽음에 맞닿아 있고, 하루하루의 삶에서 각각이 마주하는 무게, 각각의 지닌 의미는 추상화되어 버린다. 단정히 그려진 날짜의 패턴이 된다.

그러나 창백한 패턴으로 다 거둘 수 없는 삶의 결이 그가 오려 붙인 신문을 통해, 지역마다 달리하는 날짜 표기 체계로 오늘은 날짜의 연속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일상을 흔드는 강렬함조차 무화시키면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의 축적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모른다. 나는 내가 날짜를 모은다는 것만 안다”고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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