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NGO 컨퍼런스가 남긴 아쉬움
유엔 NGO 컨퍼런스가 남긴 아쉬움
  • 승인 2016.06.0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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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지방분권운동대경본부 공동대표 부산대 경제통상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30일부터 6월1일까지 경북 경주에서는 ‘제66차 유엔 NGO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컨퍼런스는 유엔이 전 세계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 시민사회단체) 들과 협력해 추진하며, 국제사회에서 주목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협의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회의이다. 특히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열린 이번 66차 컨퍼런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선 처음 개최된 것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 NGO의 위상을 반영한 것으로 긍지를 가질 만했기 때문이다. 경주 컨퍼런스는 전 세계 40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

그러나 참가자의 한 사람이었던 필자가 보기에 컨퍼런스가 남긴 성과 못지않게 아쉬움도 적지 않다. 특히 둘째 날 열렸던 두 차례의 타운미팅이 그랬다. 미국에서 발전한 대표적 직접민주제도인 타운미팅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 정책결정에 대한 주민참여 보장이나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개토론 방식의 하나로 자주 등장해 낯설지 않은 제도다.

이 날 타운미팅은 브레인스토밍 방식의 난상토론을 통해, 폐회식 때 발표할 ‘경주 행동계획’(경주 선언문)을 확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회의장에 모인 200여명의 참석자들이 선언문 초안의 문구를 한 줄 한 줄 검토하며 수정, 추가, 삭제할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제안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NGO 대표들의 이런 의사결정 과정에 공무원과 일부 학자가 지나치게 개입해 논의의 흐름을 주도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타운미팅의 취지가 훼손되는 느낌을 주었다.

온라인에 공개된 당초의 선언문 초안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 달성을 위한 빈곤퇴치와 개발의 모델’로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국내의 70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를 강조해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동원과 통제체제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있는 논쟁적인 사안이며, 시민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며 컨퍼런스 사무국에 삭제의견을 제출했다. 삭제된 문구를 다시 넣기 위해 타운미팅장을 찾은 새마을운동 관련 학자와 공무원들은 이 운동의 비정치적 성격과 해외에서의 성과를 강조하며 문구 삽입을 집요하게 주장했다. 새마을 프로젝트의 수혜를 입은 아프리카의 참가자들은 지지발언으로 힘을 실어주기도 했으나, 대다수 외국인 참가자들은 한국의 특수상황에서 진행된 데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례를 국제사회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타운미팅을 진행하던 주최측 대표들 역시 새마을운동 특별세션을 따로 마련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을 두고 이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위한 경상북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욕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더욱이 이날 오후의 타운미팅은 새마을운동 찬반논의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 중요한 다른 의제들이 심도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평가가 엇갈리고 ‘새마을’이라는 특정용어를 유엔의 공식문서에 넣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주최측은 결국 선언문에서 새마을운동을 제외시켰다.

타운미팅장에서는 그동안 국제사회의 합의방향과 달리 ‘성(性) 소수자’에 대한 배제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경북지역의 몇몇 참가자는 성 소수자 배려가한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맞지 않고 동성애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흐름에 불만을 드러냈다.

경주선언문은 ‘타인에 대한 이해, 관용을 장려하는 세계시민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타운미팅에서 보여준 일부 한국 측 참가자들의 태도는 ‘우리의 것’이 좋으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거나 ‘나와 다른 것’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윽박지르는 것처럼 비쳐져 씁쓸함을 남겼다. 국제사회의 시계바늘을 되돌려놓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연 경상북도의 자평처럼 이번 행사로 우리의 대외적 이미지가 크게 상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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