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배
‘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배
  • 승인 2016.06.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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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철학본색 대표
테세우스는 하반신은 소이며 상반신은 인간의 몸을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위해 크레타섬으로 모험을 떠났다. 미노타우로스를 제압한 후 그는 이제 고향으로 귀환해야 한다. 편의상 테세우스가 탄 배는 부품(P) 10개로만 만들어진 것이라 하자. 배가 부서지면 파손된 부품을 미리 준비해 둔 새 것으로 교체한다. 테세우스는 T0 시점에 출발했고, T1 시점에서 파손된 P1 부품을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했다. T2, T3를 지나 T10 시점에 이르면서 P10 부품까지 완전히 교체했다. 그렇다면, T0에 테세우스가 탄 배와 T10에 테세우스가 탄 배는 같은 배라고 해야 할까, 다른 배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패러독스다.

먼저 T0의 배와 T10의 배는 ‘다른 배’라고 대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시점의 배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배의 부품이 교체되는 T1부터 이미 다른 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지금도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고, 피가 새로 만들어지는 등 구성요소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 나 역시 계속 다른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인가?”하고 반박하면 이들은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사실 이 문제에서 두 시점의 배가 ‘다른 배’라고 주장하는 것이 ‘같은 배’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같은 부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같은 배라고 말할 수 없다고 끝까지 우기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품 하나가 달라진다고 해서 그 배가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T0와 T10의 배를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어떤 이들은 이 배의 부품이 달라지긴 했지만 두 시점에서 테세우스의 귀환이라는 ‘동일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같은 배로 볼 수 있는 근거로 든다. 하지만 만약 돌아오는 길에 테세우스가 죽거나 테세우스가 만약 귀환하지 않고 다시 크레타섬으로 갔다면? 이들은 목표가 달라지는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 어떤 이는 테세우스의 배를 구성하는 부품은 매 시점마다 바뀌고 있지만 ‘테세우스가 탄 배의 이데아’가 모든 시점의 배가 같은 배라는 것을 보증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선원 중 한 사람이 아테네로 도착 후 자기 집 앞마당에서 교체된 낡은 부품을 조립해 배를 건조했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와 선원이 만든 배 중 어느 것이 ‘테세우스가 탄 배의 이데아’에 더 가까운 배인지 이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T0와 T10 시점의 테세우스의 배는 같은 배다’라는 생각이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왜일까? 현대철학자들은 우리가 이 문제에서 ‘운동’을 무시했기 때문에 패러독스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테세우스의 배는 T1, T2 각각에서 정지된 채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T1에서 T2로 이동하는 과정 혹은 T1에서부터 T10으로 운동하는 과정에 존재한다. 즉, 배는 운동하고 변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가 운동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T1에서 T2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그 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테세우스의 배’의 자리에 ‘인권’, ‘자유’를 넣어보자.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시기의 인권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인권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인권’과 ‘중동-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권’은 정말 같은 인권일까? 지금 ‘영국의 기득권층이 지지하는 자유’와 ‘난민들이 찾아나선 자유’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이 모든 질문에 대해 같은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에서 봤듯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데아도, 동일한 목표도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유럽 세계는 자신들을 인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의 대변자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난민 문제에 대해 유럽 세계가 보여준 태도는 그들의 인권이 단지 자신들의 권력과 정책을 정당화하는 레토릭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영국은 그동안 의회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해왔지만 이번 브렉시트 결정은 그들의 민주주의가 단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처럼 유럽인들이 인권,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워 추구한 목표는 제3세계인들이 추구해온 목표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 민주주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는 낡아버린 부품이 되어 버린걸까?

테세우스의 배가 운동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인권, 민주주의 역시 정지해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도 끊임 없이 운동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낡아버린 부품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이러한 가치들을 지배해온 ‘유럽 중심주의’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테세우스의 배의 낡은 부품을 교체하듯 낡아빠진 유럽식 보편주의를 변화시켜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주어져 있다. 즉 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유럽식 보편주의’를 중동-아시아-아프리카-난민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보편주의’로 대체해야 할 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점에 와 있는 것인가? 브렉시트는 낡은 부품이 교체될 때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유럽식 보편주의’라는 낡은 부품을 ‘새로운 보편주의’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민주주의’로 교체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세계화를 ‘새로운 국제주의’로, 이익 추구의 자유를 ‘새로운 자유’로, 난민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인권’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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