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과 신뢰성은 기부문화의 초석
자율성과 신뢰성은 기부문화의 초석
  • 승인 2016.07.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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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경북사회복
지공동모금회 사무
처장
브랙시트(Brexit)로 온 세상이 어지럽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이변의 배경에는 사회양극화와 실업 등으로 고통받는 영국민들의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커다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서구 선진국에선 사회지도층이 기부와 나눔을 통해 사회갈등을 치유하는데 솔선해 왔다.

대한민국 기부문화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수는 1천200명을 넘어섰다. 1억원 이상의 큰 금액을 기부한 이들이 전한 성금은 1천300억여원이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살피고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한 고귀한 실천은 우리 사회를 한층 성숙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기부문화가 비교적 늦게 싹튼 우리나라에서 고액기부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일까? 아너 소사이어티를 기획하고 성장시켜 온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자의 자발적인 선택을 존중하고 기부금 사용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부문화 특강을 할 때면 나는 ‘무작정 내게 돈을 요구하는 4가지 부류가 있는데 누구일까?’하고 청중들에게 묻곤 한다. 나의 대답은 ‘깡패, 앵벌이, 정부, 모금단체’다. 깡패와 정부는 ‘너를 지켜줄테니 돈을 달라’고 말하지만 앵벌이와 모금단체는 ‘세상이 밝고 따뜻해지도록 돈을 내주세요’라고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부금이란 ‘공익을 위해 대가 없이 증여되는 금전, 또는 재산적 가치’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타자에게 증여하므로 회비와 구별되며, 사회와 공익에 기여하므로 과세대상인 일반증여 또는 상속과 다르며, 자발적으로 지출되는 측면에서 세금과 구분된다. 그러므로 ‘자발성’은 기부의 생명이며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 기부문화의 역사는 기부의 자발성 보호와 모금의 자율성 확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법 제도적 측면에서 우리 기부문화를 살펴보면 통제와 금지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기부행위가 아닌 기부금품 모집행위, 즉 모금을 강력하게 규제한 것이다. 8·15 해방과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혼란기에 기관·단체 등이 시국대책을 명분으로 기부금 납부를 강요하는 폐해가 커서 1949년 ‘기부통제법’과 1951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선량한 국민들이 강요된 기부로 금전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정부가 만든 고육지책이었으나,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 ‘모금금지법’은 반 세기 가까이 존속하였다. 이후 1995년말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법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여전히 모금은 행정관청의 허가를 받은 후에야 가능했으며 수많은 규제가 따라다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복지 시설·단체의 모금활동은 불법으로 내몰렸으며, 일반 국민들에게 모금은 규제해야할 문제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깊이 심어놓아 건강한 기부문화 형성을 저해하는 한계를 가졌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민간주도의 모금과 자율성의 중요성은 커져왔고, 국가 주도의 모금에 대한 폐해와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부는 부족한 복지예산을 보완하고 민간부문의 복지 참여를 확대하기 위하여 기부를 규제하기보다 권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기에 이른다. 1997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 제정됐고, 1998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됐다. 민간모금단체의 설립과 운영 또한, 자유로워지면서 기부자들의 기부처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기부의식 또한 빠르게 성숙해갔다.

2006년에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성숙한 기부문화의 조성과 건전한 기부금품 모집제도의 온전한 정착을 지향하기에 이른다. 금지와 규제의 관점을 온전히 탈피하고 기부금품의 투명성과 신뢰성 강화에 초점을 둔 이 법은 모금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 모금활동 인정 비용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부문화 활성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의미 있는 제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부와 관련된 법률은 모금 규제에서 기부의 자율성 보호와 권장의 측면으로 진전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기부시장이 커지고 모금경쟁이 치열해지면 기부자는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더 큰 금액을 요청받고 있음은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고민 끝에 A단체에 기부한 K씨가 수시로 B단체, C단체 등으로부터 ‘A단체에 기부금을 냈던데 우리도 도와주십시오.’라며 원치 않는 기부 요청을 받는 것이 당연시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부자는 기부를 꺼리게 되고 기부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국민들의 기부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빠르게 성숙하고 있으나 기부금을 받고자 하는, 모금하는 주체가 기부자를 배려하고 보호하지 못한 채 과당경쟁을 펼친다면 이제 겨우 잔뿌리를 내린 기부문화는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모 언론사의 기사에 따르면, 국내 모비영리단체 관계자가 모금단체간의 치열한 경쟁을 한탄하고 모금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매일 기부자를 만나고 상담하는 나는 우리가 진짜 고민할 문제는 과도한 모금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기부자에게 보람과 행복을 드릴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모든 모금단체는 국민의 복지와 공익을 위해 모금하지만 기부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율성’과 ‘신뢰성’일 것이다. 기부자의 자율성 존중은 우리 직무의 핵심가치로 기부자의 기부행위 강요를 엄격히 지양하고 있다. 원하지 않는 기부 요청이 돼려 기부자의 기부 의욕과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중한 성금을 관리하고 기부자의 뜻에 따라 투명하게 사용해야 하기에 명확한 절차와 규칙을 갖추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엔 깐깐하고 융통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단 10원이라도 세심하게 관리하며 최선을 다하기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매년 지인을 추천하고 새로운 회원들이 탄생하며 경북 고액기부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이익을 쫓아 스스로 기부자의 자율성 훼손하는 모금 활동을 하고 있진 않는지, 기부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일이다. 우리 기부문화가 성장?발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향후 어떤 모금을 꿈꾸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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