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추억
아날로그의 추억
  • 승인 2016.07.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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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중 경일대디자
인학부 패션디자인
전공 교수
방학을 맞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집안 서재를 정리한다. 이곳저곳 지저분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책장 뒤편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큼지막한 종이 상자를 발견한다. 묵직한 상자를 열어 보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모아온 여러 아티스트들의 카세트테이프들이 한가득 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고 모아 두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놀라울 뿐이다.

전설적인 레드 제플린의 음반부터 대학시절 수도 없이 들었을 김현식, 빛과 소금, 들국화의 음악까지, 21세기에서는 다소 생소한 카세트테이프의 형태로 상자 안에 존재한다. 카세트테이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시절의 아티스트들과 그들이 만든 위대한 음악들을 되새긴다.

카세트테이프 더미 사이로 낡아 빠진 카세트 플레이어 한 대가 삐죽 올라와 있다. 책상 서랍에서 카세트 플레이어에 들어갈 건전지를 겨우 찾아 끼워 넣는다. 카세트테이프도 하나 골라 장착한 후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과 함께, 잊고 있던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며 잠들어 있던 아날로그의 추억을 깨워준다.

음악을 들으며 또 다른 한편에 놓아 둔 상자를 열어보니 네거티브 필름 다발이 후드득 쏟아진다. 그 중 하나를 들어, 빛이 들어오는 창문에 비추어 보니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아련하게 나타난다. 네거티브 필름의 특성상 정확하게 누가 누구인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누가 누구이고 언제이고 어디 쯤 이라는 것을.

지금 10대들에게는 카세트테이프, 카세트 플레이어, 네거티브 필름 등의 단어들은 많이 생소할 것이며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MP3 음악과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스마트 폰 등에 익숙한 21세기의 청춘들은 아마도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네거티브 필름 등을 사용해 본 경험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매체 혹은 아날로그 기기들은 현대 사회와 문화 속에서 정말 사라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한 아날로그 제품들은 디지털 시대에 아무 쓸모없는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한 것인가?

최근 기사에 따르면 요즘 국내 음악 시장에서 많은 음악인들이 새 앨범을 카세트테이프나 LP 레코드로 제작하는 추세라고 한다. 힙합이나 인디 밴드 등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발매되는 즉시 품절되고 있다고 한다. 소장용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나타는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또한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지배하는 21세기에서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아티스트들도 많다. 필름 카메라만이 담아 낼 수 있는 그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고 있으며 느낌과 감각으로 승부하는 아트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필수적인 것이다. 36장의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새로운 필름으로 교체하는 과정도 아날로그 카메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디지털의 시대이며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감성과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여 년 전 인터넷이 대중화 되는 시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종이 책의 종말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종이의 질감을 좋아하며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감성이며 본성인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고 전자책 매체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감성과 본성을 대신 할 수 없다. 그 결과 종이 책은 여전이 건재하다. 종이 책을 들고, 보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감성을 대변하고, 지치고 힘든 인간을 위로 해 주고, 치료해 줄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아날로그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으며 아날로그 매체는 앞으로도 인간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오늘도 정오 뉴스를 듣기위해 책상위에 놓인 아날로그 라디오의 파워 버튼을 누른다. 앵커의 목소리가 선명하고 또렷하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 옆에 놓인 안테나가 달린 아날로그 방식의 라디오를 듣고 싶다. 가끔 잡음이 섞이기도 하고 주파수를 맞추는 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인터넷, 모바일 디지털 기기,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스마트 폰에 의해 점령된 21세기 사회에서 아날로의 추억에 잠깐 이라도 빠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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