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려야 할 때
손을 내려야 할 때
  • 승인 2016.07.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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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대진초등학교 교장
손은 사람의 팔목 끝에 달려 있지만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을 앞서 한다. 그래서 일을 익숙하게 하면 손에 익었다는 말을 듣고 힘을 써 일한 뒤에는 내손을 거쳐 갔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사귐이나 하던 일(버릇)을 그만 두면 손 끊었다는 말을 듣지만 손을 내밀어 언약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며 남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렇게 손이 하는 일들 중에 나는 손 잡는다는 말이 좋다. 생각이 통해 일을 함께하게 되거나 마음이 통해 정을 나눌 때 하는 말로 인간적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센추리 사전』에서 손(hand)은 ‘이해의 기관’이라 정의되어 있다. 이해한다(apprehend)의 의미는 모든 것을 손으로 쥐어보고 이해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더 와닿는 말일 것이다.

헬렌켈러는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글에서 “나에게 손은 정상인의 청각과 시각이다. 손은 고독과 어둠을 뚫고 내 손가락이 마주치는 온갖 즐거움과 활동을 감지하는 더듬이다”고 했다.

손의 감각이 주는 즐거움! 이는 굳이 세상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어린 아이가 흙장난을 하려하면 손은 즐거이 흙장난을 함께 한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예술가가 화폭에 그림을 그릴 때도 흥쾌히 동참한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기의 똥싼 기저귀를 빨아야 할 때나 청소부가 거리의 쓰레기를 치워야 할 때, 의사가 죽어가는 암환자의 몸에서 혹을 떼어내려 할 때도 손은 군말 없이 함께 한다.

그러고 보면 손은 세상사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주인의 마음을 빠르게 감지하여 충직하게 도우려는 마음뿐이다.

“부처님, 아들이 합격하게 도와주소서.” “하느님, 불쌍한 저들을 살펴주세요.”

마음에 지향하는 기도가 있을 때 겸손하게 무릎 꿇고 간절함과 지성을 담아 두 손을 모은다.

“대~한민국! 딱딱딱 따악딱!” 국가 대표선수가 국가의 명예를 걸고 공을 몰 때 사람들은 두 손 마주쳐 힘 돋우는 소리를 보낸다.

좋아하던 사람을 만나 기뻐서 얼싸 잡은 손은 팽팽한 근육으로 기쁨이 전해진다. 때로, 실의에 차 마음에 힘이 빠질 때 손이 먼저 알고 힘을 놓는다. 축 처진 손은 보기만 해도 애처롭다. 그러고 보면 손은 내면의 마음을 대신해 외현으로 보여주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교단에서 41년간 머물렀던 손을 만져본다. 철판에 분필로 글씨를 쓸 때 분필가루 묻혀가면서 온 힘을 다해 글씨를 함께 써주었던 손, 시험 문제를 낸다고, 학급문집을 만든다고 철판 위 등사용지(기름종이)에 글씨를 긁어댈 때에도 손목 시리다는 불평을 뒤로하며 함께 밤새워 주었던 손.

“너는 잘 할 수 있어” 일기장 밑에 격려의 말을 써줄 때나 “자신을 믿어 봐. 꼭 이루어 낼 거야.”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때도 부드러운 감촉과 칭찬 받아 신나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함께 즐겼다.

마치 내 손이 세례를 주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의 손처럼 신비롭고 성서롭기나 한 것처럼. 두 다리가 불편한 제자를 화장실에 업고 갔다가 들쳐 업고 나올 때는 엉덩이가 밑으로 처지지 않도록 엉덩이 밑에서 두 손 모아 잡고 깍지 끼며 온힘을 보태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손이 즐겨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정지선에 다다랐다.



아침마다 아이들 맞아 하이파이브하며 흔들던 손, 전교생 생일날 동화책 건네주며 축하 나누던 손, 달콤창고에 고민 털어놓으러 오는 아이들 반겨 잡던 손, 손은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우며 행복했다.

선생님들 생일날 꽃 한 송이 건네기, 녹색 어머니와 교통경찰, 책 명예교사, 현장학습 때 온 운전기사님께 차 한 잔 나누며 즐거워 껑충거리던 손이었는데….

정년퇴임을 앞두고 낸 『섬김밥상 행복교육』『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

책 나눔을 끝으로 나눔의 자격 정지, 베풂의 기쁨 정지선에 섰다. 이제 손을 내려야 할 때. 그래도 못다 한 마음 남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함께했던 모든 이, 고맙고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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