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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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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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시합에서 이기자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얼마나 피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던가. 대부분 결과가 좋으면 당연하고 나쁘면 뭐든 이유를 대기 마련이다. 판정이 석연치 않았거나 운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훈련할 때 그 힘든 과정을 밟아왔고 각오 또한 남달라서 승리뿐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을 것이다. 승자는 오직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승부는 동물적인 것이라서 냉정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린 경기의 결과보다 그 과정과 스포츠 정신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많은 종목 중에 난 축구에 관심이 많다. 밤잠을 설치는 것쯤은 행복해한다. 바짝 긴장하여 더위도 잊은 채 응원을 하지만, 때론 실망도 크다. 리우 올림픽 8강전에서 우리보다 약체팀 온두라스에 패하고 말았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심판의 루즈 타임 적용도 아쉬웠고 상대편의 밉살스런 침대 축구에 더 화가 치민다. 저렇게 해서 이기면 무얼 하겠나. 치사한 전술로 승리하더라도 스포츠 정신하고는 거리가 멀어 효과는 반감될 테니 말이다. 랭킹 80위권에 있는 팀에 계속 앞장서다가 단 한방에 무너지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다.

호사다마일까. 16강에서 멕시코 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기쁨에서 깨어나기도 전데 며칠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팀인데 그 팀 역시 얼마나 억울할까. 경기 내내 이기다가 쏜살같은 공격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차례 골대를 맞고 나온 것이며 슈팅도 압도적으로 점하다가 아차 실수로 무너지고 말았으니 그 분통은 우리보다 더 컸으리라. 하지만 우린 그 아픔을 챙겨주지 못했다. 승리에 도취하여 처지를 바꾸어 놓고 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잘했고 운이 좋았다는 것밖에는.

앞으로 닥칠 일을 가벼이 여긴 탓이다. 좋은 일에는 늘 시샘 꾼이 많은 법이다. 만세를 부르며 제 잘난 탓으로 여기다가 상대의 기습 펀치를 맞았다. 평소 하던 습관이 허를 찔렀다. 내 입장으로만 보다가 벌어진 일들, 그런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깊이 다짐을 해서 앞으론 절대 잃지 않도록 중용이 필요하건만, 그걸 지키기란 참 어렵다. 또 다른 욕심으로 자꾸 채우려고만 하니 제어를 당한 것은 아닐까. 결국, 그 실망과 좌절은 따질 수 없는 국가의 손실이다. 우리가 이긴 팀과 진 팀에 대하여는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겠지만, 짙은 얼룩 하나를 남겼다.

며칠 전 내게 일어난 일이다. 동료 몇 명이 여름 산을 오르기로 뜻을 모았다. 문득 휴가 겸 기차도 타고 신라 천 년의 고장 경주 남산이 그리웠다. 그날도 39도를 오르는 무더위였다. 볕은 내리쬐고 땅은 퍼석퍼석해 숨이 막혔다. 이 더운데 산에 오른다는 것은 무리라고 여기고 대부분 집에 있을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 아직은 괜찮아’ 하며 제 흥에 취해 발을 내디뎠다. 올라가는 내내 작업하는 인부 몇 명만 만났을 뿐 등산객은 가물에 콩 나듯 한두 명만 보였다. 우린 오늘 경주를 빛낸 사람들이라며 제법 객기까지 부리며 힘차게 명산을 올랐다.

남산의 북쪽 정상 금오산, 평소 같으면 사진 찍느라 발 디딜 틈도 없을 텐데 이런 호젓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은 내 복인 것만 같았다. 그러다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은 말할 수 없는 여름 등행의 묘미를 안겨주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넓고 푸른 평야에 신라인의 기상이 아직도 선연하고 꾸불꾸불 산길에도 옛 선조의 고난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하니 까짓 이까지 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푸른 소나무의 자태가 우리 기백을 인정해 주는 듯 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속으로 몇 번인가 애국가를 부르면서 벅찬 감정을 눌렀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계속 설사가 나고 힘이 빠져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식사도 못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누워있어도 편치 않아 어머니 뱃속에 든 태아처럼 쪼그려 꼼짝하기가 싫었다. 종일을 그러고 있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생 땀만 나고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티브이 뉴스를 보니 온열 환자가 급증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중 한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덥다고 찬물을 많이 마신 게 탈이 난 모양이다. 이 더위에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다녀온 것이라며 아내는 핀잔을 주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올해 올림픽 축구 4강 신화는 깨어졌다. 또다시 4년 후의 영광을 위해 험하고 먼 길을 가야 하리라. 내 비록 하루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려다 며칠을 고생했다 하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 나쁜 일 뒤엔 또 좋은 일이 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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