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그리고 방향
속도 그리고 방향
  • 승인 2016.09.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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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前 공무원
살다 보면 피치 못할 것도 많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자칫 전부를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 생긴다. 무조건 빨리 간다고 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한창 힘깨나 쓰고 기운이 넘칠 때는 까짓것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뭔가 돌파구는 있어 보여도 비껴갈 수 없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놀란다. 그게 하찮은 미물일 수도, 자연의 큰 변화에 의해서도 또 바로 옆 사람에 의할 수도 있다. 혹여 방향선택이 잘 못되었다면 돌아서라도 가자.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울게 마련인 것, 무엇하나 간과할 수 없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다.

#하루살이

복잡한 도심을 빠져 하천으로 나간다. 빌딩과 많은 인파, 차량들에 섞여 있다가 흐르는 물소리와 한가로운 물새를 접하노라니 금방 만사를 잊는다. 왜 진작 그 복잡한 곳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수명을 단축하는 일들만 일삼았을까, 우둔함을 한탄한다. 찌 하나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저 강태공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긴 산책길을 따라 가족 아니면 홀로 걸어가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즐겁다. 나는 둑길을 따라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약간 비스듬히 내리막길을 달리는 순간, 미세한 물체들이 와락 얼굴을 감싼다. 한 무더기로 몰려 잔치를 하는지 시위를 하는지 인정사정없다. 하루살이다. ‘타닥타닥’ 헬멧에 부딪치고 코로 입으로 돌진한다. 그 중 한 마리가 눈 속으로 직행하고 말았다. 저도 놀랐는지 꽉 낀 채로 발버둥을 친다. 미처 자전거 속도를 줄이지도 못하고 조악하게 당하고 만다. 그놈은 발광하고 난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점점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다. 놀란 하루살이가 알이라도 까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에 두려워진다. 어서 이 그물망에서 벗어나 맑은 물로 씻어내는 것이 상책이다. 그 속도가 문제였다. 돌아 천천히 가는 건데.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은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웃나라만 있는 줄 알았던 지진이 우리나라에도 일어났다. 처음 창문이 ‘부르르’ 떨렸을 땐 잠시 그러다 말 줄 알았다. 건물 전체가 떨렸다. 아니 한반도가 흔들렸다. 왕창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밤중에 홀로 외길을 가는 게 무서웠지만, 이 무서움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었다. 당장 위에서부터 뭔 일이 닥쳐 곧 내게로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이렇게 명을 다하는가 싶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급한 두려움이었다. 삼십여 분 후엔 더 강한 지진이 일어났고 책장 위 상패 유리가 떨어져 파손되고 장독 뚜껑이 깨어졌다. 선반 위에 올려놓은 장식물이 제자리를 잃어 꼬꾸라졌다. 반사적으로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났다. 이래서 벽이 무너지고 사람이 깔려 있다가 구조가 안 되면 갇혀 죽고 마는구나.

종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난 책상 밑에서 제발 아무 일 없이 넘어가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지진의 속도는 모든 방향을 망각하게 했다. 너무 앞으로만 보고 달렸었다. 그 후에도 사백여 차례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아내의 돌발

방 청소를 하란다. 며칠 전 했지 않았냐고 그러니 오늘 또 해야 한단다. 느닷없는 요구엔 거부감이 크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에 하도록 약속을 했으면 그걸 지켜야지 더럭 중간에 돌발 주문이 오니 난감하다. 퇴직한 후 수시로 설거지도 하고 음식물이며 쓰레기도 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지 않았던가. 자존심을 살려 이참에 아내의 잘못된 고집을 꺾어보려 단단히 맞서본다. 일체 대꾸도 안 하고 딴전을 부리지만, 내심 찝찔하고 불편하다. 아내도 물러설 기세가 없이 이번에 확실히 틀을 잡아야겠다는 집념을 보인다. 앞으로 자기한테 일체 부탁하지 말란다. 난삽한 속도전이다. 부탁이라면 당장에 의식주가 문제 아닌가. 보통 눈칫밥이 아닐 테고 옷을 빨아 달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딸리는 형국이다. 방향을 수정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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