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시(七步詩)와 칠보지재(七步之才)
칠보시(七步詩)와 칠보지재(七步之才)
  • 승인 2016.10.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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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논설실장
우리 속담에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데 인색한 심리를 표현한 말이다. 이 같은 정서는 동양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정서인 것 같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조직 내에서 우수한 인재의 장점을 인정할 줄 알아야 만이 그 조직도 우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우수한 인재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우수함의 범주에서 탈락함은 물론 생존도 힘든 것이 오늘날이다. 한마디로 포용력 있는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심리와 관련해 중국의 칠보시에 얽힌 고사가 있다. 한 편의 시로 목숨을 구한 중국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들의 이야기이다. 건안 25년(220년)에 조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그의 자리를 태자 조비(曹丕)가 물려받아서 위나라 왕이자 승상이 되었다. 이제 조정의 대권은 조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신하 중 한명이 조비의 동생인 조식(曹植)이 늘 술에 취하여 조정을 비난하고, 조정에서 보낸 사신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고해 바쳤다. 조비는 즉시 조식을 잡아 올려 심문했다.

조비와 조식은 모두 조조의 처 변태후의 소생이었다. 조식은 조조의 둘째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다. 조조는 평소 문학을 즐겼으며, 문객들을 아꼈다. 그는 조식의 출중한 글을 보고 처음에는 남이 대신 써주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래서 앞에서 글을 써보게 했는데 글 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조는 조식을 매우 총애해 왕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많은 대신들이 강하게 반대해서 포기했다. 조식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자 조비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하루는 조조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조비와 조식이 전송을 했다. 조식은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찬송하는 시를 지어 읊어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조비한테 이렇게 조언했다. “대왕님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은 그저 얼굴에 슬픈 빛만 가득 보이십시오.” 그 말에 따라 조비는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것을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이 진정이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조가 살아 있을 때, 조비는 동생 조식이 술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여러 번 망신을 주었다. 조식에 대한 아버지 조조의 신임을 없애려는 목적에서였다. 조비는 왕이 된 후에도 조식을 미워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일을 핑계로 조식을 아예 죽이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어머니 변태후가 이를 알고 조비를 불러다가, 조식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한 어미의 소생인데 형제의 정을 봐서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다. 조비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로 동생을 죽인다는 것도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어서 낮은 작위로 강등시켰다. 그런 다음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하나 짓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조식은 잠깐 궁리하더니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형을 콩대에, 자신을 콩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이 시가 바로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이다. 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렇게 자기를 들볶는 것이냐’는 뜻을 넌지시 읊은 것이었다. 문제는 이 시를 듣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조비는 가책을 느꼈고 그래서 조식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이 사건 이후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인 칠보지재(七步之才)란 말이 생겼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 구성원 모두가 칠보지재가 될 필요는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칠보지재의 소중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와 너’가 있을 수 있고, 나아가 ‘우리’가 있을 수 있다. 좋은 사회는 나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우리가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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