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주를 아십니까?
정경주를 아십니까?
  • 승인 2016.10.1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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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 여성의전화 대표
누구의 부인 ‘정씨’로만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대구근대골목에서 근대여성들을 복원하려는 대구여성가족재단의 노력으로 이름을 되찾게 된 정경주(1866∼1945)는 국채보상회 간부였던 서병규의 부인이다.

정경주는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남일동 폐물폐지부인회를 실질적으로 조직하고 취지문을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취지문을 직접 작성하고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다고도 알려진 정경주는 “부인은 논하지 말라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닌가”라고 밝히며 “부인동포들은 많고 적음을 불구하고 혈심의 의연하와 국채를 다 갚게 하는 것이 천만행심”이라고 취지문에 밝히면서 여성들의 각성을 이끌며 여성들의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조직 마련에 힘썼다.

지난 10월 13일 대구여성가족재단의 초청으로 대구근대여성들의 발자취를 톺아보는 ‘반지길’ 투어에 참가했다. 대구여성단체연합 대표들과 함께 ‘통로, 곡진한 삶이 흐르는’이라는 부제를 단 ‘반지길’에서 오랫동안 대구에 살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식민지 그 질곡의 시대에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던 근대여성들을 만났다. 일백년 묵은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가 있는 동산에서 출발해 계산성당까지 반지를 닮은 둥근 길을 따라 근대여성탐방길이 이어지기에 그 길을 ‘반지길’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동산병원 안에 있는 동산에서 대구경북지역의 기독교 여성선교운동의 선구자인 마르타 스위츠(1880∼1929)를 만났다. 18년 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비로만 활동하며 죽는 순간까지 여성교육사업에 헌신한 마르타 스위츠의 삶에서 고독을 넘어서는 열정과 헌신, 그 바탕에 깔린 인간애가 가슴으로 전해오는 것 같았다. 뛰어난 해설사인 홍수자 선생님의 안내는 척박하고 피폐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인물을 다시 우리 앞에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선교사들이 살았던 집 부근에서 삼중고의 장애인이면서도 뛰어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헬렌 켈러가 방문해 학생들 앞에서 꿈과 비전을 설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웠다. 여성선교사들은 선교의 목적으로 이 땅을 찾았지만 여성에게 공적 교육이 전무했던 시절에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을 깨우치고 교육해 훗날 그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민족의 근대를 세우는 일에 큰 기여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삶은 우리 근대의 귀한 일부로 기억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3·1 만세운동길을 걸으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상기생 현계옥을 만난다. ‘빈처’, ‘운수 좋은 날’ 등의 소설로 유명한 현진건의 형인 독립운동가 현정건의 연인이기도 했던 현계옥은 “나를 애인으로 혹은 여자로만 보지 말고, 같은 동지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하니 그 시절 신분을 뛰어 넘은 현계옥의 기개에 감탄과 존경심이 절로 나온다.

다음으로 구제일교회에서 대구 최초로 여자초등학교를 설립한 마르다 브루엔을 만나고 대구 최초의 여성성악가인 추애경을 만났다. 약전골목에서 대구최초 여의사가 운영하는 의료기관 ‘선인의원’의 여의사 김선인을 만났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의 대구근대여성발굴의 노력으로 역사의 주체로 다시 떠오른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의 연구위원은 누구 누구의 부인이던 그 여성들을 역사의 주체로 불러내기 위해 도서관과 현장을 발로 뛰며 조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문중의 산소마다 물에 젖을까봐 코팅한 안내문을 배포해 제보자를 찾았다고 한다. 기적처럼 제보자가 나타나 진골목에 위엄있게 그려진 정경주 여사의 이름 석자는 그렇게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탐방을 마치고 이루어진 간담회에서 참가자들은 근대여성역사의 복원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젠더적 관점의 해석을 할 필요성과 역사의 공과를 공정히 알리기 위해 친일의 행적도 함께 기록해 줄 것을 주문했다

‘history’라는 영어처럼 역사는 남성들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역사를 뒷받침 해 온 것은 보이지 않는 여성들, 그들의 삶이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의 대구근대여성의 발굴을 통해 역사에 가려진 대구근대여성들의 곡진하고도 열정적인 삶이 드러나게 되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척박하고 굴곡진 역사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갔던 여성들을 만나며 딱딱하게 굳어진 내 가슴도 다시 뜨겁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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