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시위 - 내 자궁은 내 것인가?
검은 시위 - 내 자궁은 내 것인가?
  • 승인 2016.11.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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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절박하게 회자 될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 위기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필자 연배에게 익숙한 이 구호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등 산아제한정책을 홍보하는 구호들을 이 시대로 불러내면 실소가 터진다.

한 자료에 따르면 주부클럽연합회는 1974년을 ‘임신 안하는 해’로, 1975년은 ‘남성이 더 피임하는 해’, 1976년을 ‘나라사랑 피임으로의 해’로 정하고 범국민적 계몽 사업을 전개했다. 심지어 1985년 동아일보에 실린 대한가족협회의 광고에는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라는 표어로 셋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에게 국가가 부끄러움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최악의 저출산 속에 한국사회에 정부가 출산장려를 위해 내 놓은 또 다른 표어들이다. 인구가 많으면 많아서, 인구가 적으면 적어서 국가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있음을 출산정책 표어들은 여실히 보여 준다. 국가에게 여성의 몸은 단지 ‘인구조절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3일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인공임신중절, 즉 낙태를 포함 시키고 시술한 의사에게는 12개월의 자격정지를 입법예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인공임신중절 전면 중단을 내세우며 강력 반발했고, 여성계의 저항이 거세지자 해당 진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위반)을 한 경우를 포함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령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나 의료계, 그 어디에도 여성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과 여성의 삶에 대한 존중이 정책과 의료주체,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저출산의 위기를 행정편의주의로 낙태죄를 통해 완화해 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이는 산아정책에 대한 표어의 변천에서도 보여 주듯이 여성의 몸을 국가가 단지 출산의 도구나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인 것이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 시위를 열었다. “임신할 권리, 임신을 거부할 자유!” “내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낙태죄 폐지!” “우리는 다른 삶을 원합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화요논평을 통해 ‘형법 제정 이후 한 번도 개정된 바 없는 ‘낙태죄’ 조항은 국가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사문화되었다가 부활하는 ‘법이되 법이지 않은’ 법이다. 시기별 필요와 이익에 따라 ‘낙태’를 조장했던 국가는 이제 저출산을 ‘핑계’로 ‘낙태죄’를 근거 삼아 여성을 통제·억압하고자 하는가. 형법 제27장 ‘낙태죄’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들은 끊임없이 음성적 수술로 내몰려 삶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것이며, 임신중절을 한 여성과 의사들에 대해 ‘비도덕’과 ‘불법’이라는 혐의를 씌워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다’며 ‘낙태죄폐지’와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현행법상 낙태죄는 임신 초기부터 출산 전까지 시기에 관계없이 무조건 범죄화 하고 있다. 낙태죄는 또한 임신한 태아와 임부의 일체성과 상호의존성을 망각하고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하여 태아의 권리는 공익으로, 임부의 권리는 사익으로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의 평등권원칙과 자기책임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낙태수술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에게 양육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못하는 국가가 낙태를 범죄화 하는 것이 오히려 비윤리적이다.

수많은 실증 연구가 낙태의 범죄화가 낙태율감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불법시술로 인한 여성건강권의 심각한 위협을 비롯한 여러 부작용만 증가할 뿐이다. 낙태의 범죄화보다 올바른 피임법의 보급, 적극적인 성 평등교육 등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예방에 훨씬 효과적임을 서구의 사례는 증명하고 있다. 낙태죄로 인해 침해되는 것은 임산부가 아닌 여성의 기본권 침해이다. 그것은 전 생애 주기에 있어 여성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의 몸과 여성의 삶에 대한 권리를 이제라도 여성에게 돌려줌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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