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토베의 고려인
우슈토베의 고려인
  • 승인 2016.11.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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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인 9만여명
카자흐 등지로 강제 이주해
황무지서 토굴 만들어 생활
“고려인, 부지런하고 강인”
의료진출 비롯한 한류열풍
선조들의 피땀 어린 결과물
김대현
계명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집성촌인 우슈토베로 진료봉사를 다녀왔다. ‘고려인’은 러시아에 사는 한국인 유민(diaspora)을 부르는 말이다.

일제치하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봉오동전투를 승리한 홍범도 등)를 포함한 한인들은 1937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키르키즈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하게 되었다.

2차대전 직전, 고려인들이 일본 스파이로 이용되는 것을 막으라는 스탈린의 명령 때문이었다.

갑자기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강제로 이주당하는 과정에서 10%가 넘는 2만1천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혹한과 기아에 약한 아이들과 노약자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첫 기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와 크즐오르다등에 96,256명, 우즈베키스탄 치르칙강 유역과 칼라카파스탄 등에 76,525명이 이주당하였다.

집을 지을수 있는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는 스텝지역 들판에서 한인들은 토굴을 파고 겨울을 지났다.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마치고, 강제이주 초기 토굴 거주지를 방문하였다.

황무지 들판 토굴터는 우슈토베로 마을을 이루어 나간후 한인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세운 기념비 뒤에 토굴이 복원되어 있었고 기념비 앞쪽으로 강제 이주후 80 여년간 이 지역에서 사망한 고려인들이 묻혀 있었다.

낯선 땅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고 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한인들은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소비에트연방은 불모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정착한 고려인들을 협동농장(콜호즈) 모범 사례로 선전하였다고 한다.

성공적인 정착을 통해 다인종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한인들은 부지런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다인종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현재 불고있는 한류열풍은 그간 고려인들의 이러한 피땀어린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좋은 이미지 덕분에 세계 9번째로 넓고(우리나라의 30배의 넓이) 지하자원이 풍부한 ‘미래의 대국’ 카자흐스탄에 많은 우리나라 기업과 병원이 진출하고 있다.

수백년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로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던 나라 카자흐스탄에는 일제시대에 망국의 한을 안고 강제이주당하였지만 열악한 환경을 꿋꿋하게 이겨낸 한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이 되었다.

고려인 3~4세대 후손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약해졌지만 선조들의 모국에서 방문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라를 되찾고 경제적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도움을 주지 않은 우리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을 기억하고 찾아준 것을 고마와 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그들은 조부모에게 배운 몇마디의 한국어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비효율적인 공산주의 의료 제도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던 그들에게 진료 봉사팀은 한민족이라는 자신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진료후 고맙다며 따뜻한 포옹을 해주던 고려인들이 생각난다. 이들에게 메디시티 대구의 우수한 의료의 손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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