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으로 표현해 낸 야성의 에너지
붓끝으로 표현해 낸 야성의 에너지
  • 황인옥
  • 승인 2016.11.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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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노 ‘Wild Aura(야기)’展

내달 1일까지 키다리갤러리

늑대·독수리 등 소재 활용

존재의 순수한 본능 묘사

두텁게 올린 유화물감으로

뚜렷하고 독특한 질감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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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노 ‘야기’전이 키다리갤러리에서 12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가 전시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3년이었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딸에게서 등록금을 보내달라는 국제전화가 왔다. 전업 작가인 조영설이 돈을 마련할 방법이라고는 그림을 파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림 팔기가 쉬운 일인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세어 나왔다. ‘탁 나’. ‘탁 놓아버리라’는 경상도 사투리였다.

그로부터 채 2분이 되기 전에 기적처럼 해결책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바로 가지고 있던 영상장비를 팔았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고, 작가 조영설 또한 이즈음 다시 태어났다.

“자나 깨나 유학 간 딸 아이 등록금 걱정을 해야 했어요. 어느 날 제가 그린 자화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눈에서 늑대가 보이는 거예요. 당시 야생의 늑대와 같은 제 처지가 자화상에 그대로 투영됐던 것 같아요.”

이 시기 그는 조영설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외쳤던 외마디 비명인 ‘탁노’를 예명으로 사용하고 작업의 방향 역시 ‘이상 쫓기’에서 ‘야생’의 기운을 회복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인물이나 추상에서 늑대 등 야생이 살아 꿈틀대는 동물그림으로 전환한 것.

“탁노로 살기 이전에는 도(道)나 무위자연(無爲自然) 등 이상을 쫓았어요. 어느 순간 그것이 위선으로 다가왔죠. 딸의 등록금도 해결 못하는 배고픈 아비가 달과 구름만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자괴감이었죠. 그래서 내 모습, 즉 야성이 살아 꿈틀대는 존재의 순수한 본능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바로 늑대였죠.”

2013년,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몸짓에 대한 상징인 늑대를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지금의 화풍이 태동했다. 당시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지만, 청마(淸馬)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더 깊은 두께감을 위해 백퍼센트 유화물감을 사용했다.

작품의 장르를 굳이 구별하자면 구상이다. 하지만 비구상도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는 야성에 야성을 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형식미와 함께 물감을 두껍게 처리하는 방식 또한 야성의 두께를 더한다. 그는 스케치 없는 캔버스에 백퍼센트 유화물감을 던진다. 두꺼운 물감이 순식간에 화폭에 달라붙고, 그의 손끝에서 늑대, 독수리, 청마 등의 동물형상이 생명을 얻어간다. 철저하게 직관적인 그리기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리기와는 선을 긋는 것.

그는 물감을 던지는 방식을 일종의 ‘화풀이’였다고 했다. “화가 나니까 물감 덩어리를 캔버스에 집어 던졌죠. 소재와 주제 모두 야성이지만 그리는 방식도 야성적이라고 할까요?”

늑대 그림을 세상에 소개하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간절하던 그림팔기는 성사되지 않았다. 유화물감을 사용하고 화폭에 야성이 본격화 되는 2015년부터 그림이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칼날 위에 선 무당”이라고 날을 세웠다. “무당이 배가 불러도 칼란 위에 서듯이 저 역시 여전히 치열하게 작업을 하고 있지요. 화가의 숙명이겠지요.”

개인전을 하면서 늘 무거운 마음이었다. 자족하지 못한 탓이다. 다행히 올 5월 전시 때부터 무거운 마음마저 내려졌다는 탁노. 작업 역시 동물들의 형태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작가는 “말의 형상을 버리고 말의 넋을 남겼다”고 표현했다. 이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의 내려 놓음이 점점 깊어지고 있음이다.

그는 그림 그리는 과정을 구도자의 수행과 비교했다. “그림 그리는 과정은 수행과도 같아요. 수행이 극에 달하면 수행이라는 개념 자체도 버리게 되듯이, 화가가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것을 통해 나를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번뇌가 깨달음을 주듯이 나를 키운 것은 내 아이들인 것 같아요.”

키다리갤러리에서 12월 1일까지 ‘Wild Aura(야기· 野氣)’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2016 아트부산, 서울 어포더블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 상하이아트페어에서 선보인 대작과 함께 최신작을 포함해 총 2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경남 밀양이 고향인 탁노는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070-7566-599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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