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용서는 기적을 낳는다
<대구논단>용서는 기적을 낳는다
  • 승인 2009.11.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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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일전 시내 모 여자상업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자루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여기에 옮겨보고자 한다.

이 선생님이 사범교육을 받고 취직을 위해 교사 모집에 응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더 좋은 여건으로 보이는 학교도 있었지만 그 선생님은 역시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힘들고 어려운 여건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다짐하고 면접장에 갔다고 한다.

이때 면접을 담당한 분 중에는 그 학교의 설립자도 있었는데 후보자들에게 어떤 교직관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선생님은 일반적인 것을 말하기보다는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 한 토막이 머리에 늘 맴돌고 있던 터라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곳에 한 부인이 있었다. 이 부인은 부잣집에 시집을 잘 왔다고 소문이 나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였다. 말썽쟁이 시동생이 하나 있어서 논밭을 잡힌다. 집안 가구를 내다판다. 하여 여간 속을 섞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이 부인은 바깥일을 하다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형수의 패물을 몰래 훔쳐 달아나려고 하던 시동생이 그만 이불 속의 아기를 밟고 말았다. 아기는 아무리 추슬러도 끝내 숨을 쉬지 않았다.

순간, 이 부인은 시동생에게 패물을 다 내어주며 말했다. “이 아이는 이제 운을 다한 모양입니다. 이 아이는 제가 책임질 테니 도련님은 이 패물을 가지고 가서 제발 열심히 책을 읽어 과거에 급제하시기 바랍니다.”

이 부인은 억지로 패물을 안기며 시동생을 떠밀었다. 부인은 자기의 첫아이가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숨을 거둔데 대해 울부짖었지만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았다. 집안에는 자신의 실수로 아이가 숨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늘 죄인처럼 행동하였다.

남편도 시어른도 모두 이 부인을 심하게 구박하였지만 꾹꾹 참았다. 이윽고 몇 해가 지나 이 마을에 큰 잔치가 열렸다. 망나니짓을 일삼던 시동생이 몇 해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과거에 급제하여 삼일유가(三日遊街)를 나온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시동생은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서 맨 먼저 그의 형수를 찾아 앉히고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구경 왔던 사람들은 혀를 차며 한 마디씩 하였다. “그래, 그 버릇 어디에 가겠어.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한테 먼저 인사하지 않고 아이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제 형수한테 먼저 절을 하다니!” “그러게 말이야, 그것도 몇 해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급제했다고 나타났으니 급제도 거짓말 아닌지 모르겠어.”

이 분위기를 눈치 챈 시동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제가 있도록 한 것은 모두 제 형수님 덕분입니다. 제가 패물을 훔치러갔다가 갓 난 조카를 밟아 숨지게 했을 때에 형수님은 저를 용서해 주시고 패물까지 내어주시면서 절에 가서 공부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제가 어찌 형수님 은혜를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먼저 절을 올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이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말할 수 없는 구박을 받아온 부인이었지만 여전히 겸손한 얼굴이었다. 이 선생님은 이 이야기 속의 부인처럼 아무리 심한 경우에라도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주며 열심히 근무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재단 이사장은 즉석에서 이 선생님을 채용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신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도 함께 근무하도록 배려하겠다고 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선생님이 많을수록 우리 교육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 선생님을 비롯한 아름다운 분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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