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
  • 승인 2016.12.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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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김장을 했다. 친정어머니의 한 해 정성이 배춧잎 켜켜이 배어 있는 배추로 김장을 했다. 친정어머니는 여느 해처럼 집 부근 텃밭에서 배추를 길렀다. 올 초 있었던 어머니의 무릎관절 수술이 회복되기 전이라 자식들은 모두 어머니의 밭일을 만류하였다. 자식들이 만류한다고 손을 놓을 어머니던가. 어머니는 홀로 다시 배추를 심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배추를 심고 결국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몸살을 앓으셨다고 한다.

그 더웠던 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이 배추벌레로부터 배추 속을 지켜 준 덕에 배추는 토실토실 잘 자랐다. 배추뿌리가 영양가가 있어서 그런지 흙이 덩어리 채 달린 배추뿌리마다 지렁이가 한 마리씩 들러붙어 있다. 어릴 적 비온 뒤 길거리에서 꾸물거리는 지렁이를 볼 때마다 기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배추뿌리에 들러붙은 흙 속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고 태연히 뿌리를 잘라내는 나 자신이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 손아래 올케와 배추를 뽑아 누런 잎을 떼어 내고 뿌리를 잘라 리어카에 실었다. 마당 한가득 배추를 부려 놓고 반으로 자르고 배추뿌리 부분은 간이 잘 배이도록 칼집을 넣었다. 칼집을 넣어야 배추를 절일 때 간이 잘 배인 다고 어머니가 일러 주셔서이다.

또 다른 마당 한 모서리에 커다란 고무대야에 물을 담고 삼년동안 묵혀서 간수를 뺀 천일염을 넣어 소금물을 만든다. 다듬어 반으로 자른 배추에 간을 하기 위해 소금물에 배추를 담근 후 배춧잎 사이로 굵은 소금을 다시 한번 쳐 준다. 배추를 절이고 담기 위해 너댓개의 커다란 고무대야가 총 출동되었다. 맨 아래 배추가 잘 절 여기지 때문에 여러 번 절인 배추의 위치를 아래위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나절 소금에 절인 배추더미를 아래위로 옮겨 가며 적당히 간이 배어들면 여러 번 맑은 물에 헹구어 커다란 채반에 받혀서 밤사이 물을 빼야 한다.

그렇게 절인 배추를 씻어 채반에서 물을 뺄 동안 마당 한구석에 놓인 솥에서 육수를 끓인다. 육수에는 다시마와 북어대가리, 멸치, 디포리라 불리는 멸치보다는 훨씬 큰 납작한 말린 생선, 껍질을 까지 않은 양파, 무, 말린 새우, 늙은 호박 등등의 재료를 넣고 몇 시간 푸욱 끊인다. 육수를 끓일 동안 부엌에서는 찹쌀풀을 끓인다. 싱싱한 생멸치와 천일염으로 일년을 숙성시킨 멸치젓도 가시만 남을 정도로 닳인다. 육수와 찹쌀풀, 닳인 멸치젓은 절인 배추에서 물이 빠지는 밤사이 차갑게 식힌다.

다음날은 김장에 넣을 양념을 만들어 김장을 완성하는 날이다. 김장 소로 쓸 채 썬 무와 갓, 미나리(올 해는 청각을 잊고 사다놓지 않아서 청각이 들어가지 않았다)와 굴을 준비해 절인 배추에 양념을 이파리 사이사이 치대서 양념에 버무린 김장소를 중간 중간 두세번 나누어 넣어 주면 김장이 완성된다. 여기서 맛을 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김장양념이다. 어머니가 전수해준 우리 집안의 김장양념은 양이 많아 방앗간에서 갈아 온 마늘과 생강에 전날부터 끓여 식혀 놓은 육수와 찹쌀풀, 닳인 멸치젓과 멸치 액젓, 새우젓 등을 넣고 버무리면서 일년을 숙성한 매실엑기스를 함께 넣어 버무린다. 버무리면서 젓갈로 간을 맞춘다. 양념의 양도 워낙 많아 커다란 고무대야에 어른 키 절반은 될 법한 긴 나무 주걱으로 저어야 한다. 주걱으로 양념을 저어 섞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라 남동생이 맡아 땀을 흘렸다.

절인 배추잎 사이사이 양념을 치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김장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하루를 바닥에 앉아 작업을 해야 한다. 무릎 수술을 하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거의 혼자서 이 힘든 작업을 하셨다. 그리고 김장용 통에 김치를 담아 각지의 자녀들에게 보내 주곤 하셨다. 밭에서부터 배추를 뽑아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치대는 일까지 김장의 모든 작업을 감당해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김장을 했는지 뼈에 와 닿는다.

일상에서의 여성의 노동은 인류의 생존에 기본이 된 노동이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하찮게 취급이 되었다. 보이는 역사 뒤에서 소리 없이 존재한 여성의 삶이 영웅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것처럼 여성의 노동은 보이지 않는 역사의 절반 그 이상인 것이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지위와 임금을 감내하고 있는 계층은 바로 여성들이다.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하고도 집안일을 하는 여성은 자신이 논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집안일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장을 하면서 평가절하 당하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김장도 절임배추를 사다가 담기도 하고 주문생산에 맡기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필자도 언제까지 김장을 할 지 예측할 수 없다. 김장을 집에서 담아 먹든 브랜드 김치로 대체하든 여성의 노동이 제대로 대우받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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