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깍두기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 많은 깍두기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 승인 2017.02.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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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어린 시절 골목에는 늘 깍두기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깍두기란 ‘이 편에도 저 편에도 못 끼는 아이들을 양쪽 편에서 다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동료 배려 시스템’인데, 아이들이 골목에 삼삼오오 모여 다방구나 얼음땡,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항상 그곳에는 깍두기들이 있었다.

깍두기가 깍두기가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무줄을 해야 하는데 키가 유난히 작아서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짖을 때 다리가 절대로 안 올라간다거나, 다방구를 해야 하는데 다리를 약간 전다거나, 같이 끼워달라고 조르는 친구 동생이 깍두기가 되기도 했고, 아무도 그 애가 우리 편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을 때 그 아이는 깍두기가 되었다. 사람이 하나 남아서 누구를 빼야할지 고민될 때 누군가 그냥 깍두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깍두기는 왜 ‘깍두기’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깍두기를 만들려고 무를 썰다보면 끄트머리가 각진 네모로 썰어지지 않고 삐뚜름한 모양으로 썰리는 데서 유래한 이 말은 깍두기가 대부분 네모 반듯 하지만 끝이 둥근 것도 깍두기로 인정하겠다는 뜻이 들어있다. 모양이 다르다고 버리지 않고 다 함께 버무려 깍두기로 만들겠다는 것, 함께 놀기 어려운 아이가 있더라도 남겨두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려는 태도가 깍두기를 만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늘 깍두기를 끼워줬다.

그런데 골목이 없어지면서 아이들의 골목 문화도 더불어 없어지고, 그리고 깍두기들도 사라졌다. 이제 아이들은 짝을 지을 때 누구 하나가 남거나 어느 편에도 끼워주기 싫은 아이가 생기거나 몸이 불편한 아이가 있거나 좀 둔해서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친구가 있으면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같이 끼워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왕따 시킨다.

친구를 왕따 시키고 충고하는 어른을 폭행하며 교사의 멱살을 잡는 지금 아이들의 모습들은 우리가 공동체문화를 잃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생겨났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때 아이들은 골목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하며 웃어른에 대한 예의를 배웠고, 골목의 형과 누나들로부터 사회적 규칙과 규율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친구들과 놀면서 양보, 배려, 우애를 함께 알게 됐다. 골목이 아이들을 성장시켰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던 골목이 없어지면서 공동체 속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을 스스로 습득할 수 없어지자 아이들의 인성에는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친구를 경쟁관계로 보도록 강요하는 학교와 부모들의 요구가 더해져 아이들은 점점 더 거칠어져만 간다.

뒤늦게 학교와 교육부가 입시에 아이들의 배려심과 인성을 평가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점수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설에 큰 집에 모인 아이들은 각자 손에 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서로 만나 웃고 떠들고 부대끼고 싸우며 그 사이에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채 좁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세상을 만난다. 친구를 경쟁자로 보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배려와 양보를 배울지 걱정하기는커녕, 우리는 아직도 아이의 성적만이 아이를 평가할 우수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성적으로 아이를 줄 세우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끝이다. 고등학교 이후의 세상은 주변사람들에게 더 많이 공감하고 더 잘 배려하는 아이를 더 나은 사회인으로 간주한다. 아이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골목은 사라졌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공동체이고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목이 사라진 지금, 우리아이가 뒤처지고 모자라는 친구를 깍두기로 만들어 끼워주게 될지, 경쟁에 방해가 된다고 왕따를 시키게 될지는 부모의 몫으로 남게 됐다.

깍두기들이 사라진 세상에 살게 된 아이에게 깍두기의 의미를 얘기해주자. 아이가 깍두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긴 방학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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