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의 근본적인 개선을 바란다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의 근본적인 개선을 바란다
  • 승인 2017.03.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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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경영상의학과의원 원장
요즘처럼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달빛어린이 정책의 부진의 책임을 오롯이 뒤집어쓰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속병이 깊다. 의사들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확실히 억울한 면이 많다. 필자는 5개월 전 현실성 떨어지는 달빛어린이병원 정책 때문에 오해받는 의료계의 고민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후 이 정책은 지금까지도 근본적인 개선 없이 여전히 의사들의 외면 속에 표류중이다. 그러다가 최근 지역의 한 언론에 대구경북지역 병의원의 참여율이 특히 낮은 이유가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의 집단 이기주의, 조직적인 반발 때문이라고 집중 보도되면서 다시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아이가 낮에만 아픈가요? 심야, 휴일병원 안 하려는 의사들’, ‘소아청소년과 의사 집단 이기심에 갈 곳 잃은 어린이 환자’라는 기사 제목만 얼핏 봐도 대구경북지역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고 환자는 나 몰라라 하는 대단한 악당들이다. 그러나 천하의 대역죄인도 소명의 기회는 주는 법이니, 부족하나마 그들의 속내를 대변해 볼까 싶다.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은 밤이나 공휴일에 어린이들이 아플 때 외래 진료가 가능한 소아과병의원을 만들자는 제도이다. 일반 소아청소년과의원이 진료하지 않는 공휴일이나 야간의 의료 사각지대에 소아 환자를 진료해 줄 병의원을 확보해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자는 좋은 취지이나, 그 실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평일 야간(11~12시까지)과 휴일(오후 6~10시까지)에 매일 진료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기사, 행정직원 등의 인력이 필요한데, 젊은 세대의 야간 및 휴일 근무 기피 성향을 생각하면 임금을 더 준다 해도 충분한 진료인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혼자 진료하는 개인의원의 경우 매일 밤 12시까지 진료를 연장하면 근무시간은 15시간에 달한다. 거기에 휴일 진료까지 더하면 슈퍼맨이 아닌 다음에야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근무시간을 나눠 진료할 다른 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야간 및 휴일만 전담해서 근무하겠다는 전문의를 구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의사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고용한 근무의사와 번갈아가면서 야간 및 휴일 진료를 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근무해야 한다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혹, 의사의 사명감(?)으로 이 가혹한 근무환경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더라도,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의사를 포함한 간호사 등 진료실의 인력들을 유지하려면 야간진료시간에 최소 20명 이상 더 진료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진료 환자수가 이에 못 미치는 의원도 많은 현재 우리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서 야간 진료실을 연다고 해서 매일 그만큼의 환자가 증가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간단히 말해서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고, 이 문제를 해결하여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더라도 득보다 손실이 많다는 것이다.

3-4인 정도의 의사가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의 경우도, 혼자 근무하는 개인의원보다 조금 낫기는 하겠으나 뾰족한 묘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작은 병원은 보통 8-9시 정도까지 번갈아가면서 야간 진료를 하고 있는데, 이정도의 야간 근무도 상당한 부담이 되어 이를 기피하고 있는 형편인데 12시까지 근무를 연장한다면, 새로 의사를 충원하기는커녕 기존 의사들의 이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결국 10인 정도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는 큰 병원이라야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더라도 큰 무리 없는 인력 운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대구경북에 이런 규모의 소아청소년과병원이 몇이나 될까? 이 정도 규모가 되지 않는 개인의원이나 작은 병원에게 달빛어린이병원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허울 좋은 그림의 떡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은 그 시작부터가 현실을 무시한 생색 내기용 전시 행정이다. 진정 시민의 불편을 덜어 주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강요나 여론의 뭇매가 아니라, 제도의 보완과 개선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의료 기반이 잘 갖춰진 지역으로 손꼽힌다. 홍보가 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북대학교병원과 동산병원에는 소아환자를 위한 야간 진료 창구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 다른 대형병원들도 이와 같이 소아환자를 위한 야간 진료 창구를 만들고, 필요한 예산을 대구시나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굳이 못하겠다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들을 괴롭힐 필요 없이 달빛어린이병원에 상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야간, 휴일의 의료 사각지대 해소는 공공의료에서 해결할 문제이지, 민간의료에 떠넘길 사안이 아니다. 언론은 의사를 돈만 보고 아픈 아이들을 외면하는 악당으로 매도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일이 안 풀린다고 서로를 탓하기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한 가닥씩 실마리를 풀어가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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