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밥상, 특별해서 맛있다 -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스토리가 있는 밥상, 특별해서 맛있다 -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 승인 2017.03.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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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을 듣는다. 동백에 매화가 폈다더니 드디어 벚꽃이 활짝 만개했다는 소식이다. 꽃들은 해마다 긴밀한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지 아래로부터 질서 있고 역동적으로 겨울을 몰아내고 꽃등을 켠다. 아직 대구 도심의 가로수에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꽃들이 하나 둘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머지않아 도심에도 어마어마한 꽃 잔치가 열리겠다.

요즘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참 재미가 난다. 좌판에서 다양한 봄나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나온 이맘때 봄나물들은 보약이나 다름없다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향긋한 봄내음과 함께 보드랍고, 아삭한, 갖가지 봄나물의 식감은 봄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여름으로 다가갈수록 고추도 오이도 미나리도 원추리, 산나물도 단맛보다 쓴맛으로, 또 싱거워지고 질겨지고 맛이 없다. 고추도 여름이 시작되면 매워지고 만다.

편식이 심한 아이들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찰리와 롤라가 등장하는 로렌 차일드의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국민서관). 독특하고 발랄한 상상력과 세련된 그림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의 그림책은 다양한 재료의 콜라주기법이 뛰어나다는 점과 아이코노텍스트(글자 배열의 이미지가 텍스트의 역할을 하는)의 활용으로 글과 그림의 상호텍스트성이 높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난 콩하고 당근하고 감자하고 버섯하고 스파게티하고 달걀하고 소시지는 안 먹어. 난 꽃양배추하고 양배추하고 콩요리하고 바나나하고 오렌지도 안 먹어. 난 사과하고 밥하고 치즈하고 생선튀김은 싫어. 그리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토마토는 절대 안 먹어”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편식이 심한 자녀를 키우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것인가?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는 부모님들은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될듯하다.

롤라라는 여동생은 꽤나 편식이 심한 아이다. 이런 롤라에게 오빠인 찰리가 엄마 대신 밥을 차려주게 되는데 롤라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이 말한 요리는 절대 안 먹는다며 버틴다. 그러자 찰리는 꾀를 발휘해 새로운 이름을 붙여 마침내 롤라가 절대 안 먹는다는 토마토를 스스로 먹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찰리가 선택한 방법은 스토리를 곁들인 유머로 호기심을 자극 시켜 롤라가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다. 초록콩은 초록 나라에서 비 처럼 내리는 초록방울, 당근은 저 먼 목성에서만 난다는 오렌지뽕가지뽕, 으깬 감자는 어렵디 어려운 백두산 꼭대기로 올라가 겨우 구해온 구름 보푸라기라는 식이다.

가끔 어린이 수업에서 참여를 잘한 아이들에게 사탕이라는 보상을 주면 방해를 놓는 장난꾸러기들이 있다. “에이, 우리 집에도 그 사탕 많아요!” 나는 그딴 거 안 받아도 하나도 안 부럽다는 이야기다.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한다. “오우! 이게 사탕으로 보이니? 이건 00이가 힘들 텐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서 선생님이 주는 상이야! 사실은 이것보다 더 큰걸 주어 칭찬하고 싶은데 말이야 오늘은 이것 밖에 없어서 무지 아쉽단다.” 조그만 사탕 하나의 가치가 변해버린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스토리텔링은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밥상 위에 스토리텔링을 입혀보라. “이것 좀 먹어 봐. 지난 일요일에 할머니가 주신 산수유 잼을 넣어서 버무렸는데 어때?” “여기여기 이거는 엊그제 00시장에 갔더니???.” “1402호 효은이 아주머니 언니가 강원도에 사시는데 이번에 농사지어 보내온 것이야.” 신기하게도 젓가락이 권하는 음식으로 쏠린다. 스토리와 함께 먹는 밥은 특별해서 맛있다.

패스트푸드에 인스턴트, 가공식품들이 매일 밥상에 오른다. 식품첨가물과 식재료가 주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길들여진 맛과 편리함에 멀리할 수가 없다. 그럴수록 건강한 밥상이 필요하다. 재래시장에 들려보라. 우리나라 사계절을 느낄 수 있고 재료만으로도 맛있는 먹거리가 넘친다. 가장 건강하고 밥 있는 밥상은 계절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밥상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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