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부담 저수가’와 느림보 탁상행정
‘저부담 저수가’와 느림보 탁상행정
  • 승인 2017.03.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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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 원장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있다. 이런 때야말로 여러 산업분야의 경제 생산 주체들과 정부·관리감독기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인 협업이 더욱 절실하다.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스스로 성장 동력을 찾아내고자 하는 민간기업들을 비롯한 각계의 피를 깎는 노력을 인정하고 도와주며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정책을 펼쳐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나라는 임상의료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조기에 도입이 되는 ‘의학 선진국’이다. 결과적으로는 훌륭하다 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즉, 우리나라가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서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국가가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비용 결정과정을 거치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저부담, 저수가’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그러한 가혹한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 의료인들이 최신의 기술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이러한 의료계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술들이 임상에서 적용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그 기술에 대한 평가와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고 인정기준을 최대한 신속하게 확립해야 할 국가 기관들은 느림보 탁상행정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부실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평가 및 자문시스템을 핑계로 비용 줄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에도 그 실례가 있었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심평원)이 새로운 진단기술을 오인해 평가한 후 56억 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하려다가 그 처분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대학병원 14곳은 지난 2009년부터 4년간 자가면역질환 의심 환자들을 상대로 ‘EUROLINE Anti-ENA Profileplus 1’을 사용해 체외진단을 실시했다. 이들은 이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 ‘항 ENA항체 검사’ 항목으로 심사청구를 했고,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 심평원은 이들이 한 의료행위가 면역블롯법으로 시행한 ‘항 ENA항체 검사’로서, 당시 임상적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의료기술 평가 신청이 반려돼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없는 항목임에도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이유로 총 56억 원에 달하는 정산금액을 환수처분을 했다.

그러나 법인 14곳은 이 방법이 기존 진단기술인 EIA법에 속하는 LIA법에 해당하므로 요양급여비용 청구는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삭감의 근거로 삼은 신의료기술 평가 자체가 기존 진단기술인 EIA법이 아닌 새로운 진단기술인 면역블롯법으로 오인한 평가였다는 것이 팩트였다. 결국 지난해 서울행정법원(1심) 재판부는 의료법인 측의 손을 들어줬고 심평원이 항소했지만 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심평원의 이 사건 처분은 모두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심평원은 자신들의 적법한 시스템으로 심사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으나, 당하는 의료기관은 파산할 수도 있다. 그들이 가진 심의 시스템이 전문성과 객관성에 심각한 편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삭감의 근거로 삼기 위해 그 시스템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 심평원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따라 전문평가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결정 및 조정 신청된 행위·치료재료 등의 요양급여 대상 여부, 상대가치점수 및 상한금액 등을 심의·의결한다.

그런데 최근 자체 감사 결과 전문평가위원회의 ‘학계·전문기관’ Pool의 경우 실무에서 무작위 추출로 선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매우 좁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실은 “최근 기술발전에 따른 신기술이 지속적으로 보건의료시장에 진입하는 등 전문평가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할 의료서비스 항목의 양적·질적 확대가 예고된다.”면서 “전문평가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위원회 구성 인력풀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빈약한 시스템을 가지고 버티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대한민국은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의료수준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나라이다. 정부 정책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국가가 의료가격을 통제하면서 저수가를 강요하는 와중에도, 의료인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악전고투한 덕택이 크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들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좋은 정책이 낳은 순작용의 결과물이 아니라 의료 생산주체들을 누르고 눌러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게끔 한 후의 슬픈 결과물일 뿐이다.

‘적정부담-적정진료-적정급여’가 아니라는 점을 정부도 알고 심평원도 알고 심지어 많은 국민들도 이제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의료기술을 꾸준히 도입하여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의료계의 노력마저도 부실한 평가·자문 시스템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임상에서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뿐만 아니라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들까지도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최고수준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신속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저수가에서 신음하며 악전고투하는 의료계를 위해서, 그리고 그 수혜를 받아 마땅한 국민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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