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간절함은 같은 말이다 - 윌리의 소방차
꿈과 간절함은 같은 말이다 - 윌리의 소방차
  • 승인 2017.03.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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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찰스 키핑이라는 그림책 작가가 있다. 존 버닝햄,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와 함께 영국 3대 그림책 작가인데 우리나라에 알려진 그의 그림책으로는 <길거리 가수 새미>, <빈 터의 서커스> , <창 너머>, <윌리의 소방차>, <낙원섬에서 생긴 일> 등 여러 편이 있다. 찰스 키핑의 책은 어둡고 우울하다는 평가가 있어 독자들 간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나의 경우 <창 너머>를 보자마자 그 예술성에 빠져 열성팬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그의 책 중 [윌리의 소방차]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예전에, 그러니까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 아들 또래 유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으면 남자 아이들의 경우 ‘소방관’ 또는 ‘레미콘 운전기사’, ‘버스 운전기사’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있는 한 사이렌을 울리며 방화복에 빨간 불자동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 로망인 아이들이 아직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윌리의 소방차>는 소방관이 되고 싶은 주인공이 꿈에서 현실의 욕구를 만족시켜 보는 내용이다.

윌리는 거무스레한 연립주택에 산다. 연립주택 너머로는 성이 보이고 윌리는 날마다 집 앞에서 성을 바라본다. 윌리의 침대 머리맡에는 액자들이 여러 개 걸려 있는데 그중 윌리가 제일 좋아하는 액자는 소방차를 타고 있는 소방수 액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윌리가 영웅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우유배달부 마이크. 윌리는 마이크를 도와 빈병을 모아오는 일을 자주 도와준다. 어느 날 윌리는 아무리 기다려도 마이크가 오지 않자 우유공장으로 찾아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침대 머리맡 액자에 있는 것과 똑같은 소방차를 보게 된다. 마이크는 눈부시게 화려한 소방수의 복장으로 말안장에 앉아 성에 불이 나서 공주님을 구하러 가야한단다. 그리고 “어린이 구조대원이 한 명 필요한데 네가 우리와 함께 출동하지 않을래?”가 말한다. 윌리는 멋진 소방복을 입고 꼬마 구조대원이 되어 영웅처럼 공주님을 구한다.

찰스 키핑의 일러스트는 너무나 개성이 두드러져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석판화를 활용한 정교함이나 단정함, 무게감, 밝음과 어둠이 동시에 느껴지는 과감한 색채표현, 섬세한 심리묘사, 키핑만의 독특한 캐릭터, 한 장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속도감, 웅장함, 서늘함 등에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한편 오히려 이러한 몇 가지 특징들이 어린이들에게 정서적 불안감을 준다는 이유로 키핑의 책을 기피하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작가는 세상은 음지와 양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것이 어린 독자들의 정신 건강을 튼튼히 할 것이라는 믿음이 읽혀진다.

윌리의 머리맡 벽에 걸린 액자가 무채색에서 꿈을 꾸고 나서 붉은 빛으로 바뀌어 있다. 액자 속 인물들도 꿈에서 본 인물들로 바뀌었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외롭고 소심해 보이던 윌리의 얼굴이 꿈을 꾸고 나서 붉은 색채와 함께 환한 미소로 빛난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인용하자면 ‘병약한 소년 윌리의 모습을 통해 작가인 찰스 키핑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외로움, 무의식 세계 속에 자리 잡은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윌리의 욕구는 꿈이라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소방수라는 강한 존재가 되어 공주를 구출하고 꿈을 실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꾼다. 좋은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좋다. 아주 어릴 적 꽤 많이 꿈에 물 위를 핑핑 날아다녔던 나는 아직도 그 기분과 자유로움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 기운에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절함이 있어야 꿈이 생긴다. 간절함은 누구의 권유로 생기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때 아릿한 꽃망울처럼 생긴다.

‘늘 꽃길만 되소서’라는 인사가 있다. 세상살이가 꽃길만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원하던 원치 않던 날씨처럼 비 내리는 날도 있고 폭풍우에 집이 다 부서지는 일도 생긴다. 그 속에서 꿈, 간절함, 희망이라는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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