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넓은 모자 씌워주지 않아도
측백나무를 배경에 두어서
이마가 눈부신 사람
세상 근심은
둥근 몸 안에 가둔 탓에
둘둘 말은 솜이불 둘러쓰고
언제든 굴러 갈 두 개의 몸
늦은 밤 뜻밖의 전화 걸려 와도
얼굴 찌푸리지 않는 사람
아래와 위가 염주처럼 꿰인 사람
그대 숯검정이 같은 갈망에
눈썹 하나 더 그려 넣을 때
마음 빗장 조금은 열렸을 것
나는 지금 행복하다며
미끄러운 비탈의 길가에 서서
측백나무의 뿌리에게
녹을 날 기다려
몰래 몰래 건네는
물 한 모금
◇박윤배=1989년 매일신춘문예 등단
1996년 <시와 시학> 신인상
시집 <쑥의 비밀> <얼룩> <붉은 도마> <연애>
2009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감상> 하루하루 근심걱정이 끊일 날이 없는 인생이지만 둥글둥글 내색 않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눈사람. 이리저리 세상을 구르고 구르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한 탓인지 본인의 근심 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늦은 밤 걸려오는 전화도 푸근하게 받아 줄 여유가 생겨난 모양이다. 우리네 인생도 구르고 구르면 더욱 커지고 푸근해지는 눈사람처럼 둥글둥글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듯하다. -달구벌시낭송협회 박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