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승인 2017.03.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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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폴란드의 세계적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쓴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는 한 달에 무려 3천여건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10대 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달에 3천여건의 문자를 보냈다는 것은 하루에 100통, 매 10분마다 한 번 꼴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소녀는 하루에 단 10분도 혼자서는 지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쉬지 않고 주변의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 소녀가 자신의 걱정이나 불안, 꿈이나 희망 같은 것들을 스스로는 고민해본 적이 있을지 바우만은 걱정한다. 소녀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혼자 지낼 수 있는 기술을 배워볼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혼자만이 오롯이 지내는 시간, 고독을 음미하는 시간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만 하는 것인데 이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지 미국 소녀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IT 강국인 한국은 어디를 가나 빵빵한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그뿐인가? 데이터 무제한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달라붙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하루에 100통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을지도 모른다. 바우만은 이 현상이 사람들이 스크린 화면의 깜박이는 불빛에 걸려든 것이라고 본다. 심지어 그는 웹 사이트를 통해 나누는 소통이 ‘강력한 마약’이라고 말한다.

핸드폰을 잠시만 손에서 놓아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현대인들에게 이런 접속이 강력한 마약이라는 사실은 설득력이 있다.

부모가 인터넷 접속이나 핸드폰 사용을 막을 때 10대들이 얼마나 극렬하게 저항하는지만 봐도 이것이 강력한 마약이라는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그들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서 만남을 이어간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거나 손을 잡을 수도 없지만 그들은 서로 ‘좋아요’나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홀로 있다는 쓸쓸함을 쫓아낸다.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얼굴을 붉힐 일이 없다.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보이면 언제든 접속을 끊으면 되므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하거나 상대의 고통에 공감할 필요도 없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기 싫을 때, 이 어색한 분위기가 참을 수 없을 때 그들은 언제든 온라인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온라인에는 ‘좋아요’를 눌러주는 착하고 친절한 친구들로 넘쳐나는데 굳이 불편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조차 서로 눈길 한 번 안 마주치고 각자의 핸드폰만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바우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즐겁게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창밖을 응시하면서 당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일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과 아주 가까운 주변에 있는 진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도 점점 덜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신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당신 가족과는 점점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온라인에 접속하는 시간에 사람들은 고독을 누릴 기회를 놓쳐버린다. 사람들이 놓친 그 고독 속에는 집중해서 생각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숭고한 조건이 들어있다.

혹시 지금 핸드폰으로 이 기사를 접속하고 있다면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자. 그리고 생각에 집중하면서 나에게 찾아올 고독을 만나자. 그래야만 우리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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