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 맞닿은 茶문화 보존해 우리 정체성 지켜야”
“선비정신 맞닿은 茶문화 보존해 우리 정체성 지켜야”
  • 대구신문
  • 승인 2017.03.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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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력의 전통차 연구 1세대

대학시절 한시·시문 접하며

茶 예찬글에 푹 빠져 문헌 연구

이론 정립·자작 茶詩 아우른 저술

실용서 출간해 문화 보급에 앞장

“신라 수도 가까운 대구는 ‘茶 성지’

역사 바탕 전통문화 증흥 이뤄야”
홍익다도-인물
차와 함께 평생을 함께한 차박사 최정수 원장은 “차는 일상생활을 부드럽게 하고, 고독을 달래며, 욕심을 버리고 타인과 융합하게 하고, 종국에는 지혜를 얻어 탈속의 경지에 들게 한다”며 전통차 예찬론을 펼쳤다. 전영호기자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다. 땅덩어리는 작아도 커피 소비로는 대국이다. 한때 전통차가 성행하던 시절이 없지는 않았다. 80~90년대에 붐이 크게 일었다. 차의 힐링적 효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통찻집이 우후죽순 문을 열고, 녹차재배 농가가 늘어났다. 하지만 2천 년대로 접어들면서 커피가 도심의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전통찻집은 온 데 간 데 없고 커피집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전통차가 사이드(side) 메뉴로 전락했을지언정 살아남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최정수(70) 사단법인 한국홍익차문화원 원장은 누구보다 전통차의 몰락에 가슴을 친다. 전통차의 미덕이나 효능이 쉽게 손을 놓아버려도 될 만큼 간단치 않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이자 정신이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 유전인자까지 서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야 되겠나?”

최근 최 원장이 다서(茶書) 두 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차명구(茶名句) 365편을 실은 ‘다훈집(茶訓集)’과 차정신이 오롯이 담긴 차문화 시집 ‘차 한잔’이다. ‘다훈집(茶訓集)’에는 차생활 인생철학을 담아 직접 쓴 차의 명구(名句)들을 수록했고, ‘차 한잔’에는 차를 가까이 하면서 느끼는 단상이나 차의 미덕을 노래한 자작시들을 실었다. 이 책들은 50여 년을 차문화연구가로, 시인으로 살아온 최 원장 삶의 결실이다.

그는 80년대에 책 ‘차란 무엇인가’, ‘가정에서 차나무 가꾸기’를 출간하고, 무크지 ‘다중(茶衆)’를 발행하며 차문화 보급에 앞장서왔다. 30여 년 만에 새롭게 책 2권을 동시에 출간한 것은 전통차 정신을 널리 알리면서 더불어 전통차의 귀환을 염원하는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

“차인이라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하는 정신이 있다. 그런 정신을 책에 담았다. 행다((行茶) 이전에 정신을 먼저 바로 세워야 제대로 된 행다가 나온다. 정신이 빠지고 겉치레만 바라보면 허례허식에 빠지기 쉽다.”

최 원장은 차에 관한한 모르는 것이 없다. 차 이야기로 몇 날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차문화원 한 편에 마련된 서재 서류 보관함에 수북이 쌓인 차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 자료가 그가 차 박사임을 증명한다. 이는 그가 차에 보낸 열정의 결정체이자 전통차문화의 자산이다. 강의를 위해 만든 자료에는 차의 역사와 차 도구, 행다법, 차생활법, 차수행법 등 차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하루 8시간 꼬박 해도 40년을 강의할 만큼의 방대한 분량이다.

“차를 마시는 법 하나하나에는 다 의미가 있다. 찻잔의 차를 세 번에 걸쳐 마시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의미를 모르고 마시는 경우가 많다. 차와 관련된 도구에도 이름이 있고 기능이 있다. 옛 자료나 문헌을 통해 그런 것을 찾아낸다. 자료나 문헌에 없는 것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내가 새롭게 이론을 만든다.”

동아시아 대표 3국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각 나라마다 특색 있는 차(茶)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중국은 4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손님접대는 물론 외출할 때 자신이 마실 차를 가지고 다닐 만큼 차가 일상적이었다. 물이 탁해 차를 마실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요인이 그들의 차문화를 견인했다. 일본은 엄격한 법을 정립하고 지배계층의 고급문화로 성장했다.

이에 반해 우리의 차 문화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됐다. 학자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정신음료로서 차를 활용했다. 최 원장이 전통차문화에서 바라본 지점 역시 수행정진의 매개로서의 차였다.

“옛 선비들은 차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가다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물질만능으로 정신의 황폐화가 깊어져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더욱 필요한지도 모른다.”

최 원장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전통차 연구 1세대다. 50년의 차력으로 차이론, 행다, 차교육, 차(茶) 시인, 차문화 연구 등 이론과 행다를 고루 겸비하며 차문화 활성화에 일구월심(日久月深) 노력해 왔다. 특히 전통 차문화를 한국 선비문화와 접목한 ‘사단법인 한국홍익茶문화원’을 설립해 50년 동안 연구하고 실천한 자신의 차(茶)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2012년에 한국차를 빛낸 1세대 원로차인으로 선정되어 ‘한국의 근현대 차인열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차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이 점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 사상과 닮았다. 차야말로 홍익이념에 가장 잘 부합한다.”

차(茶)는 일찍부터 우리 땅에 깊게 뿌리 내렸다. 선덕여왕(632~647) 시절부터 차가 성행했고, 흥덕왕(826~836) 이후부터는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퍼졌다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전한다.

신라의 다도(茶道)를 계승한 고려의 다도는 우리나라 역사상 차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다. 이 시기에는 ‘차와 밥이 일상’이라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전성기였다. 하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조로 접어들면서 차(茶) 문화는 급격하게 쇠퇴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화됐다.

시대적 불운을 겪고 전통차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은 60년대다. 스님들에 의해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끊어졌던 차 문화 복원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점차 일반인들에게로 확산됐다.

최 원장이 차를 접한 것도 60년대 후반이다. 그의 나이 겨우 십대 후반이었다. 대구 수도산에 있는 서봉사 등각불교학생회 창립에 관여하면서 법문하러 온 송광사 주지였던 구산(九山) 스님에게서 처음 차를 접했다. 이후 해인사 일타 스님, 통도사 경봉선사 그리고 고(故) 다성(茶星) 금당 최규용 다사(茶士)와 이따금씩 차회를 가지면서 다도와 선다(禪茶)를 경험했다.

“구산 스님이 수도산에 오시면 ‘이놈아! 구하기 힘들었다. 옜다, 약이다’하며 차 봉지를 던져 주셨다.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순간이었다.”

차(茶) 이론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재학 시기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매월당 김시습 한시, 고운 최치원 시문이나 포은(圃隱) 문집을 접하고, 차(茶)를 예찬하는 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고문에 나타나는 차’를 화두로 문헌 연구에 뛰어들었다.

“도대체 차가 무엇이기에 시대의 학자들이 차를 저렇듯 예찬했을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차 공부에 대한 투지를 불태웠다. 행다는 물론이고 차 이론공부와 차의 역사까지 광범위하게 공부해 나갔다. 차츰차츰 차는 나의 삶인 동시에 전부가 되어갔다.”

최 원장은 차문화에 선비문화를 접목했다. 여기에는 행다 자체보다 정신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차문화의 정점을 구가했던 선비들의 차와 학문에 대한 무한신뢰와 믿음에 매료된 이유도 크다. 옛선비정신을 이어받아서 그런듯 그에게도 차(茶)와 시(詩)는 둘이 아닌 하나였다.

70년대 후반에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전통차문화와 선비문화를 접목해 ‘홍익다도’를 정립했다. 70년에 첫 시집 ‘열일곱 개의 변신’을 발간하고 계속해서 시를 지어 왔지만 2006년에 차시(茶詩)로 문예한국 ‘詩문학’으로 등단해 본격적으로 차시(茶詩)를 지어왔다. 그에게 ‘차’가 행하는 ‘시’라면 ‘시’는 정신으로서의 ‘차’다.

“차는 일상생활을 부드럽게 하고, 고독을 달래며, 과한 욕심을 버리게 한다. 타인과 잘 융합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하며, 종국에는 지혜를 얻어 탈속의 경지에 들게 한다. 이러한 차의 정신은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가 말하는 전통차는 녹차를 말한다. 녹차는 발효하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를 말한다. 인위적인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아 자연에 가까운 차다. 찻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거나 뜨거운 불에 덖거나 증기에 쪄 말려 만든다. 녹차가 차가운 성질이고 카페인이 들었다는 이유로 멀리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최 원장은 “찬 기운은 뜨거운 물에 우려먹기 때문에 찬 성분이 날아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카페인 또한 커피의 카페인과 성질이 달라 몸에 해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통차는 중국차처럼 비싸지 않고, 일본에 비해 행다도 소박하다. 지나침이 없고 덕(德)을 숭상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꼭 닮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구가 차문화의 메카다? 최 원장은 사실이라고 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차문화가 성행했는데 경주와 대구는 지척이다. 대구도 경주 못지않게 수준 높은 차정신과 차문화, 차인이 존재했다는 것.

“차 생산지는 대개 보성, 강진, 하동이지만 차를 즐겨 마시고 차문화가 성행한 곳은 결국 신라였다. 그런 역사의 고장인데 우리가 어디 가서 차를 배우겠나? 바로 여기가 차 성지인데…”

우리가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주체성이다. 75억 명이 살아가는 글로벌 무대에서 남과 구별되는 고유한 ‘주체성’은 생존 가치다. 최 원장은 전통차문화의 중흥이야말로 주체성 회복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우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는 찻잔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된다. 비우고 채기우기를 반복하면 내 곁에 산이 있어 차로 숨을 쉬는 나는 온 종일 눈이 부신다. 이 맛에 여기까지 왔다. 이것이 우리의 고유 정서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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