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 후
거울 없이도 살 수 있을 때
설령 비듬이 어깨에 쌓이기로서니
태양이 빛을 던져 은가룬 듯 하잖겠는가
쉬임없이 회상은 날아와
상처들을 가려 주겠고
나의 오래 후
거울 없이도 살 수 있을 때
정말 슬픔도 고를 줄 알아
참으로 서럽게 울 수도 있잖겠는가
시새움 사라지고
어쩌면 무심조차 하겠고
나의 오래 후
거울 없이도 살 수 있을 때
안개는 흩어져서
죽었던 벗들은 달려오고
진심을 말 하고도 부끄러워하잖으리
(이하 생략)
--------------------------------------------------------
▷서울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4년『여원』 신인문학상, 1974년『현대문학』에 `안개 속에서’ 등이 추천돼 등단.
중국의 고전 `장자(莊子)’에는 거울에 대한 재미있는 말이 있다. `거울은 남들이 거래하는 대로 맡겨버린 채 자신이 참견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미인이 오면 미인을, 못난이가 오면 못난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되 그 비췄던 물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렇듯 많은 것을 비춰 주건만 자신의 맑음과 밝음을 그르치는 일이 없다’
일찍이 군자(君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그렇다. 시인이 `거울 없이도 살 수 있을 때’는 실로 초월자의 경지를 보는 듯하다. 상처와 시새움도 사라지고, 진심을 말 하고도 부끄러워하잖은 가식없는 삶의 경지를 이 시에서 재발견하게 된다.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