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화지능이 필요하다 -‘에즈라 젝 키츠 상’
이제 문화지능이 필요하다 -‘에즈라 젝 키츠 상’
  • 승인 2017.06.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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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주말에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캐러비안 해적’과 ‘겟 아웃’이다. ‘캐러비안 해적’은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조니 댑’으로 기대가 컸었는데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주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실망이었다. 그런 반면 공포 스릴러물인 ‘겟 아웃’은 어쩌면 누구나 상상해 보고 그려볼 수 있는 뻔한 시나리오지만 그 뻔한 상황들을 아주 디테일하고 새로운 기법으로 연출하여 관객들에게 잠시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 수준 높은 영화였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평가다.

‘겟 아웃’은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 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하고 의료기술 발달로 야기될 미래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의 삶의 격차와 상대적 빈곤감에 대해 생각하게도 한다. 또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 그 부류의 사람들이 폐쇄적 공간에서 그들만의 비밀을 키우고 있는 장면은 가진 자에 대한 불신과 폭력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전해주는 주제는 오바마처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사회에 잔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풍자다.

‘에즈라 잭 키츠’(1916~1983)라는 그림책 작가가 있다. 뉴욕 브룩클린의 유태계 폴란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그림책에 ‘피터’라는 흑인아이를 주인공으로 그리면서 처음으로 소수 민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데서 역사적 의의를 남긴 작가다. 그러나 단지 흑인아이일 뿐 현실의 흑인아이가 겪는 가난과 사회적 편견과 같은 모습은 반영하고 있지 않아 현실과 동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그 당시 흑인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유니세프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에즈라 잭 키츠 상’을 설립하고 현재도 소수 민족, 인권, 다문화적 주제를 가진 전 세계의 우수한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상을 수여한다.

‘에즈라 잭 키츠’는 콜라주와 마블링을 이용하여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앉던 의자를 동생에게 물려주는 <피터의 의자>,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가슴 쿵쾅거리며 생일 초대 편지를 보내러 가다 생긴 에피소드 <피터의 편지>, 눈이 오는 날 즐거운 바깥놀이와 대비되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눈 오는 날>, 그 밖의 <안경>, <휘파람을 불어요>, <내 친구 루이> 등에서 세련되고 아름답게 사용된 콜라쥬와 기름과 물이 섞여 만든 우연한 마블링의 효과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책 그림은 아름답고, 주인공 피터는 피부색과 아무 관계없이 놀이와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이다.

우리나라 작가로 2006년 경연미 작가의 그림책 <멍청한 암탉>이 제15회 에즈라 잭 키츠상 신인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에 선정되었다. 경연미 작가의 그림은 어느 한 특정 문화에 정박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이 경연미 작가의 작품세계다. 작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를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고. 더 많은 곳에서 살고 싶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지식을 쌓고 싶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가장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다.”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생각의 틀을 끊임없이 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융통적인 사고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작품으로나 삶에 대한 그의 철학으로나 ‘에즈라 젝 키츠’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작가이다.

‘문화지능’이라는 말이 있다.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사회도 급속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자랑이었던 우리였기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그리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이제 조화로운 사회를 이해서 우리가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이다. ‘문화지능’의 자질을 높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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