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의 진실과 허구
리얼리즘의 진실과 허구
  • 승인 2017.06.2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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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희 탈북민
인문학강사
고대에서 중세와 근대를 거쳐 오늘 날 까지 철학이나, 문학사조나 예술사조 등에서 리얼리즘은 존재했었고 존재해오고 있다. 특히 리얼리즘은 프랑스 7월 혁명을 전후로 압박당하던 민중이나 개인이 문학작품에 등장하면서 꽃을 피워왔다. 영웅이나 권력통치자들을 찬양하던 송시가 고대와 중세문학의 기초였다면 리얼리즘문학은 근현대문학의 명맥을 이어온 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북한에서 많은 리얼리즘작품을 읽었었다. 지금도 16살 여고시절 읽었던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1833)의 한 장면이 선하다. 평생 수전노의 삶을 살았던 그랑데 영감이 임종을 도와주려고 온 신부의 목에서 흔들거리는 은십자가를 보고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다가 죽는 모습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수전노의 아버지와는 반대로 사랑에 헌신하는 외제니의 모습에서 바보 같은 순종과 사랑을 느꼈었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1866)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던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안나 카레니나”(1877),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의 저자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와 같은 리얼리즘 대가들의 작품이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당대 사회상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어떤 철학이나 문학이나 예술일지라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대중의 환영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과거 구소련이나 오늘 날의 북한 문학에서는 진정한 리얼리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문학은 레닌에 의한 사회주의10월 혁명 이후 구소련에서 발생발전 하였으며 중국과 북한문학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구소련과 개혁개방이전 시대 중국이나 북한의 문학과 예술에서는 리얼리즘이 수령을 찬양하고 체제를 결속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도대체 리얼리즘이란 무엇일까. 리얼리즘이 철학에서부터 유래되었다거나 문예사조나 예술사조니 하는 복잡하고 유식한? 이야기를 제쳐놓고라도 리얼리즘(Realism)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사실주의(寫實主義)다. 한자로 뜻풀이 한다면 ‘베낄 사’, ‘열매 실’, ‘주인 주’, ‘옳을 의’ - 여기서 <實:열매 실>은 바탕 혹은 본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참다움>이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사실주의는 본질의 뜻을 해치지 않고 그 참다움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베끼는 것이다.

진정한 리얼리즘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즉, 보편적 삶을 골고루 담아내는 것인데 과거소련과 중국, 북한의 문학예술에서는 주인공의 형상이 항상 수령과 당에 충성하는 역할에만 극한 되어있다. 특히 북한의 문학예술작품에서는 주인공은 언제나 수령과 당을 위해 죽어야 하고, 지어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남녀 간의 진한 애정이나 스킨십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북한에 있을 때 필자는 세상에서 북한이 최고이고 김씨 부자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인줄로 알았었다. 불타는 교실에 뛰어들어 김씨 부자의 초상화를 목숨으로 건져낸 한 청년의 영웅적 소행?이 미덕이 되고, 필자는 그런 “영웅”들을 본받으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령의 초상화나 동상을 쓸고 닦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었지만 결국 그 당과 수령은 우리 가족과 북한 주민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았다.

최근에는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많이 불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주민들은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내 나라가 제일로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국가나 체제에 대한 비판적 리얼리즘을 철저히 배제한 이러한 허구 리얼리즘은 국민들을 무지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북한이나 과거 구소련의 문학예술에만 허구 리얼리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도 왕왕 어떤 사건이나 현실문제에서 사실주의적으로 보려하지 않고 겉모습이나 포장된 것이나 아니면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일이 많다.

필자가 북한에서 “톰아저씨의 오두막집”(1852. Harriet Beecher Stowe), “부활”(1898-1899. Lev Nikolayevich Tolstoy), “로빈슨 크루소”(1719.Daniel Defoe) 등 세계문학선집을 읽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다수가 놀라워하는 반응이다. 북한에서는 오로지 김씨 찬양노래나 부르고 체제선전문학만 있을 거라는 관점이 당연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어는 필자가 김씨 찬양문구가 들어가지 않은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를 언급하니 종북이라고 하는 분도 보았다.

분단이라는 비극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다가올 통일을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올곧게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4차 산업시대에 들어선 우리는 “화합과 융합”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나와 조금만 달라도 배척하는 분열이 아니라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하면서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기 위한 펙트가 바로 진정한 사실주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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