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바람결, 그 제삿날
<좋은시를 찾아서>바람결, 그 제삿날
  • 승인 2009.12.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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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정 향

한 생애를 홀로 넘어선 들길 위에서
어머니는 꿈속에서듯 추억의 순서를 차리신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 없는
흰 눈길 위에 굳고 단단한 발자국을 남기듯이
세월 속에 홀로 익힌 잔잔한 예지의 식탁을 차리신다.
밤새 울음 울던 풀잎 끝의 이슬들과
숨소리 끊일 듯 이어 가는 들꽃들의 향내와
그 위에 흰머리 풀고 앉은 서러운 햇살들과
때론 밤새 자지 않고 서걱이던 갈대밭의 바람과
흰 설움으로 부딪쳐 오는 어느 먼 포구의 파도들이
수런수런 이마를 맞대고 실타래 이야기를 풀어 가듯이
오랜 세월 할머니가 물려준 그 순서대로
오래 살아간 그 순서들과 또 오래 살아가야 할
지혜의 고빗길이 담긴 그
예지의 식탁을 차리신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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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생. 이화여대 약학과 졸. 미국 켄터키주립대학 수학. 계간『문학예술』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지역의 여성시인. `바람결, 그 제삿날’에 대해 문학평론가 권기호 교수는 “제삿날에 이루어지는 풍속의 한 양식을 통해 오래 흐르고 있는 우리 정서의 예지를 자연적 소재와 결부시켜 능란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바 있다.

제삿날 상을 차리시던 어머니는 시인의 근작인 `여명’에서 `어느 날의 기억의 눈물 저 끝에 / 걸린 문장(文章) 속으로 / 새삼 늙어 보이는 / 어머니’로 변모하고 있다. 좋은 시는 부질없는 설명을 허용하지 않는다. 밤새 울음 울던 풀잎 끝의 이슬, 숨소리 끊일 듯 이어가는 들꽃, 흰머리 풀고 앉은 서러운 햇살, 밤새 자지 않고 서걱이던 갈대밭의 바람 - 이 모두가 빼어난 시적 이미지의 성취로 하여, 가히 기교의 시인이라 하겠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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