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명작은 행복을 준다
<대구논단> 명작은 행복을 준다
  • 승인 2009.12.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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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일전 강원 산간 지방에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음지마을에 쌓인 눈은 양지마을에 쌓인 눈보다 더 차갑고 천천히 녹는다. 휴전 직후의 가난한 세월을 보내었던 우리들은 모든 것이 귀하였지만 특히 입성이 귀하였다. 겨울이 되면 얇은 신발에 발을 동동 굴러야만 하였다. 목양말도 귀하였지만 아무리 껴 신어도 발시려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문득 미국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Dances With Wolves)’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수우족들은 안전을 찾아 겨울 야영지로 갔지만 거기에도 기마병들이 들이닥치자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제대로 입을 것도 챙기지 못한 채 쫓겨 가야만 하였다.

같은 인간임에도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살육당하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야만 하였다. 누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그처럼 박해하였을까? 이 영화가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인간다움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주인공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현명한 인디언 족장 `열마리 곰(Ten Bears)’, 인자하면서도 사려 깊은 `새 걷어차기(Kicking Bird)’, 용감한 청년이자 의지가 굳은 `머리에 부는 바람(Wind In His Hair)’, 그리고 인디언이 된 백인 여자 `주먹 쥐고 일어서(Stands With A Fist)’ 등인데 이들은 새로운 친구 죤 던바(케빈 코스트너 분)에게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는 외로운 주인공인 죤 던바가 역시 외로운 늑대와 함께 모닥불 둘레에서 춤을 추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름들은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어, 떠올리기만 하여도 그들의 강렬한 삶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

둘째는 여느 서부영화와 다른 각도에서 인디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대개 괴성을 지르는 잔인한 약탈자로 나오곤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늙은 인디언 추장을 필두로 지혜롭고 인정 많은 인디언들이 등장하여 사람으로서 가야할 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백인은 착한 사람으로 인디언은 악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탈피한 서부영화를 일반적으로 수정주의 서부영화라고 한다. 수정주의 서부영화가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성찰이 뒤따랐다. 수많은 관객들이 필요하였고 가슴 깊은 공감대가 필요하였다.

이 영화 `늑대와 춤을’도 그러한 수정주의 서부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영화의 흥행에 힘을 입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조지 코스마토스의 `툼스톤’, 샘 레이미의 `퀵 앤 데드’ 등 주옥같은 서부영화들이 줄을 잇게 되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인간은 역시 근본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셋째, 이 영화에 얽힌 뒷이야기도 이 영화에 대해 애착을 가지게 하는 요소이다. 이 영화를 기획한 케빈 코스트너는 영화 제작을 위해 많은 제작사를 찾아다녔으나 한 결 같이 분량이 너무 길고, 인디언들의 대사가 너무 많아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할 거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하였다.

그리하여 케빈 코스트너는 직접 자금을 모아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자금이 달리자 스스로 주인공과 감독을 맡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마침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작품/ 각색/ 감독/ 편집/ 촬영/ 음악/ 음향)을 석권했고, 골든 글로브 3개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곰상을 수상하여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이 영화로 캐빈 코스트너는 역대 배우 출신으로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 리차드 어텐브로에 이어 네 번째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영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성공한 인물 이야기는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준다. 이것이 우리가 명작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찬바람 부는 이 겨울 따듯한 영화 한 편을 가슴에 품는 즐거움에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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