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 안에서 산가지로 궁리궁리하다
장막 안에서 산가지로 궁리궁리하다
  • 승인 2017.07.3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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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 교장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은 공을 가지고 경기를 해 승패를 가린다. 관중들은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경기는 가끔씩 ‘운’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공’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들고 ‘운’이라고 응원을 하기도 한다.

운(運)은 운수(運數)를 말한다.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운수도 내포하고 있다.

운수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에 수(數)도 있다.

속담에 ‘수 때우다’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다가올 불길한 운수를 미리미리 다른 것으로 대체해 겪음으로써 면하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 어쩌면 하늘이 정해준 천운이나 길흉화복의 기수(氣數)가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운은 여러모로 ‘궁리궁리하다’를 함의한다. 마음속으로 요모조모 따져가며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사기를 쓴 사마천도 ‘학자들은 귀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괴이한 일은 있다’고 말한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이 된 장량에 대해 두 가지의 괴이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장량이 젊었을 때 노인에게서 받았다는 강태공의 병법서가 하나이고, 한고조 유방이 전쟁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장량이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공을 세운 것이 그러하다고 사기에서 말하고 있다.

장량이 ‘장막 안에서 산가지로 궁리궁리하다’는 뜻의 고사성어는 ‘운주유악’이다. 가만히 들어 앉아 계책을 꾸밈을 나타낸 말이다.

산가지는 아직도 초등학생이 셈을 할 때 유용하게 쓰는 나무 막대기이다. 아이들은 산가지로 사물의 요런 면 조런 면을 궁리궁리하면서 이치를 터득하는 셈을 한다.

이 방법이 유치해 보이기는 해도 이것이 진짜 자기주도적 학습방법이다.

아마 장량도 산가지로 말, 마차, 병졸, 장군, 장검, 성, 산, 강 등을 만들어 가며 여러모로 궁리궁리했을 것이다.

아군과 적군을 만들어서 작전을 세우고 모형전투를 실시하고 병력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면서 계책을 세웠을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이 잔치를 베풀었다. 유방은 신하들에게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과 항우가 패한 까닭을 말하시오”했다.

여러 신하들은 고조(유방)가 땅을 빼앗아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패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방은 ‘지기일(知其一) 미지기이(未知其二)’라고 말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뜻이다.

일의 자초지종과 숨은 이치를 모른다는 의미이다.

유방은 ‘대체로 군사들에 대한 정보를 분석해, 장막 안에서 산가지로 궁리궁리하는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도록 하는 데에는 나는 장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어루만져 주며 군대에 보급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소하만 못하며,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한신보다 못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장량, 한신, 소하와 같은 참모와 용장을 통솔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논공행상에서 소하, 한신, 장량은 많은 복록을 받았다. 그런데 후일 대장군 한신은 모반을 꾀했다는 죄명으로 유방에게 참살되고, 상국 소하는 유방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아 중죄인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장량은 그러한 일을 예견이나 한 듯 천하통일 후 적송자(赤松子)가 되기를 원했다. 적송자는 전설적인 신선을 말한다. 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한 신농씨 시절에 비의 신이었다.

그 적송자는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았고, 전설적인 높은 산 곤륜산의 서왕모 석실에서 불사의 물을 마시고 비바람을 타고 놀았다는 신선이다.

그래서 장량은 일부러 적송자가 되기 위해 곡식으로 만든 일체의 음식을 끊고 신선술을 배워 몸을 가볍게 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평생 전쟁 때는 ‘장막 안에서 산가지로 궁리궁리’ 하던 장량이었다.

그의 사당엔 ‘지지(知止)’라는 말과 ‘공성신퇴(功成身退)’라는 글이 있다.

이는 멈출 때를 알아야 하고, 성공한 후에는 몸을 낮추어 물러날 줄 알아야 함을 예견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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