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사이드(Femicide)
페미사이드(Femicide)
  • 승인 2017.08.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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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살인 예고남”, “여혐유투버를 검거하라”, “혹시 도망가려면 가라. 실제로 만나면 저한테 죽을 수 있다”... 최근 ‘갓건배 리얼 추격전’, ‘갓건배 집 가는 길’ 등의 영상을 촬영한 남성 유투버들이 ‘갓건배’라는 한 여성을 쫓는 영상을 유투브에 올리면서 SNS로 회자되던 언설들이다. ‘갓건배’로 알려진 여성유투버가 남성을 혐오하는 방송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피해여성을 추격하는 방송이 생중계 되었고, 방송 채팅창에는 갓건배로 추정되는 여성의 전화번호와 집주소가 올라왔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얼른 죽여라’ 등의 댓글에 동조하며 가해남성들의 행동에 동조했다고 한다. 심지어 가해자는 살해협박을 하며 후원금까지 모금했다고 한다.

다행히 방송을 시청하던 네티즌들의 신고에 의해 살해협박 가해자는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러나 처벌은 어이없게도 불안감 조성 혐의로 범칙금 5만원에 불과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공언하며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고 있었는데 경범죄 처벌로 벌금 5만원이라니! 사람의 생명을 공개적으로 위협하는 일이 경미한 것이라면 경찰이 중하다고 여기는 사안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최근 강남에서 혼자 왁싱샵을 운영하던 여성이 살해당했다. 살인범은 한 BJ남성이 유투브에 올린 영상을 통해 피해자가 혼자 샵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계획적으로 접근해 살인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샵을 인터넷에 알린 BJ는 피해자가 혼자 일한다는 사실을 영상을 통해 알리며, 성적 흥분을 강조하는 등 성적 의도를 담아 영상을 편집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이 영상을 보고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것도 모자라 고통 속에 죽어가는 피해자를 성폭행 하려 했다고 하니 말로서 그 잔혹함을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2016년 강남역에서 일어난 여성혐오살인과 2017년 강남에서 다시 일어난 왁싱샵 여성살해사건은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한 무시와 차별, 혐오의 문화 안에서 일어난 여성혐오살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살인들은 페미사이드다(Femicide, 여성살해). 페미사이드란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성한 말로, 좁게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부터 넓게는 일반적인 여성살해를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페미사이드는 1976년 여성학자 다이애나 E. H. 러셀(Diana E. H. Russell)이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이 심한 불평등 사회일수록 페미사이드가 많이 발생한다. 경제적,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인 여성이 페미사이드를 포함한 폭력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최근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발생한 여성혐오살인을 모티브로 한 어떤 영화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영화가 여성혐오살인이라는 당시 사건의 맥락을 무시하고 ‘가해자의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로 살인이 일어난 것처럼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살인이 아니라 가해자 개인의 심리정서적 문제, 혹은 성격적 문제로 소위 말하는 ‘개인의 일탈’로 사건규정을 하고자 했을 때 한국사회의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무존중 등 여성혐오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적 맥락이 은폐될 수 있기 때문에 ‘강남역 살인’을 우발적 살인으로 정의한 이 영화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강남역이나 왁싱샵 여성살해는 여성이어서 표적이 되었고 살해당한 페미사이드이다.

여성은 한 인간이면서 시민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기도 하다.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할 수 없다. 성평등한 사회는 제로섬게임처럼 남성의 이익을 빼앗아 여성에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가장 극단적 폭력인 페미사이드는 바로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는 성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을 통해 비로소 종식 가능할 것이다.

강남역에서, 전국의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수많은 여성, 시민들이 그렇게도 여성혐오범죄를 규탄했건만,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 사건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왜곡하는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성차별적 인식의 수준과 문화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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