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왕십리 로터리
소월素月은 빗속에 서있고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말을 건넨다.
그제나 이제나 왕십리엔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밀리고 쓸리며 바쁘기만 하다.
쉰 해를 넘겨 오는 왕십리
골목길은 많이도 바뀌는 사이
하나 둘 친지들은 솎아 가고
내 얼굴엔 검버섯이 피어난다.
소년이 바라던 해말간 눈빛은
어느 별에 가 닿았을지
거기서도 젖은 꽃숭어리 들고
눈부시게 종소릴 퍼뜨리고 있을지.
이날 껏 골라잡아 지내오는 왕십리
아무리 걸어도 비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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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출생. 본명은 은규. 경희대학교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69년『자유문학』추천으로 등단.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으로「너와의 최후를 위하여」「천년의 바람」「마침내 아득하리라」등 16권 있음. 경희문학상, 현대시인상, 한국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대상 등 수상.
시인은 왕십리가 고향처럼 정든 `쉰 해를 넘겨오는 왕십리’인가 보다. 그는 왕십리의 중심인 행당동에 살고 있는 시인이다.
비 내리는 왕십리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속에 서 있는 키가 큰 시인의 모습이 이시 속에서 확연히 보인다. `골목길은 많이도 바뀌는 사이 / 하나 둘 친지들은 솎아’ 가는 왕십리 길에서.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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