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행’ 자체가 일본 관습…“친일미화 관광사업 중단해야”
‘순행’ 자체가 일본 관습…“친일미화 관광사업 중단해야”
  • 김종현
  • 승인 2017.08.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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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어가길’ 역사전쟁 가열
지역사 연구가 관련 자료 소개
조선 왕의 민생투어는 ‘행행’
순종황제 순행과 성격 달라
이토 히로부미가 기획한 행사
대열 배치도 일본식 따라
중구청 “고증 거쳤다” 주장에도프러시아 군복인 순종 복장도
日 군복으로 잘못 알려지는 등
역사인식 오류 곳곳서 드러나
역사가·시민단체 등 비난 확산
남순 역사공간
수창초등학교에 조성된 남순역사공간. 중구청 제공
순종황제 어가길 조성사업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동상의 의상이나 친일적 요소 뿐만 아니라 ‘순행’ 자체가 일본의 풍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어가길 조성사업의 문제점을 다시 짚었다.

(편집자 주)


순종황제가 대구역에서 하차할때 환영
순종황제가 대구역에 하차할 때 모습. 중구청 제공

“조선시대 왕은 궁을 떠나 순행을 한 적이 없다.” 대구 중구청의 다크투어리즘이 왜색 시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순종어가길 기념사업에 비판적 입장인 지역사 연구가 서태영(51·인물갤러리 이끔빛 대표)씨는 순종의 ‘남순행’이 일본 메이지 천황의 순행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연구 발표 자료를 소개했다. 서씨는 조선시대의 순행(巡幸)은 관찰사의 고유 업무이지 왕의 것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서 씨는 “조선시대 왕들의 민생투어는 왕의 행복한 나들이를 뜻하는 ‘행행(行幸)’이라했고 치욕의 다크투어리즘으로 포장된 ‘남순행’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주장했다. ‘남순행’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선의 것이 아닌 일제 천황의 것이므로 순종 어가길 복원사업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은 건국초기부터 왕의 행차에 백성들의 피해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궁밖 행사를 금하다시피 했다. 정조가 수원 행궁을 했지만 이는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라기보다 수원을 배후 도시로 삼아 왕권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치러진 행사였다. 정조는 서울 남쪽의 교통 요지에 상업이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도시를 새로 건설해 외세에 맞서는 수도 남쪽의 국방 요새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정조가 화성 행궁을 할 때 문무 대신과 군사 6천 명, 왕의 직속 수행원 1천 700 명, 말 779필이 동원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니더라도 왕의 행차에는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 백성들의 불편이 컸다.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민심을 살피는 순행을 직접 하기보다 관찰사의 임무로 넘겼다.

임민혁의 ‘조선 왕실의 가례 2’란 책의 ‘조선초기 요하의(遙賀儀)와 군신질서’편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왕의 순행을 맞이하는 의례가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왕의 순행은 중국 고대 주(周) 봉건시대의 왕과 제후 사이의 정치사회적 관계를 잘 나타내는 의례이다...(중략)그런데 조선에서는 왕의 순행제도를 없애는 대신, 외관이 정기적으로 상전진하(上箋陳賀 임금이나 왕비에게 서장이나 글을 올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하례를 올리는 일)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 조선 정부에서는 각 지방에 대한 국왕의 일원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수령들에게 지방 통치를 위임하여 파견하는 군현제를 시행했다”고 되어있다. 조선시대의 행행(行幸 행복한 행차)에 대해서는 “‘백성이 임금의 행차를 행복하게 여기다’라는 의미가 담겨진 백성들을 만나는 행복한 나들이로 모든 백성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국왕과 백성이 어우러진 축제는 8일 동안 이어진 조선시대의 민생투어”라고 적고 있다.

또 이왕무 박사의 ‘대한제국기 순종(純宗)의 남순행(南巡幸) 연구’를 보면 “일본 정부는 명치 천황의 순행을 본으로 삼아 순종의 순행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한인들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시도하였던 것이다”라고 돼있다. 이 박사는 연구자료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을 보필한다는 명목으로 수행하면서 순행지에 도착하면 매일 밤 환영회에 참석하여 한일간의 우호를 다지는 연설을 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환영회 만찬 연설에서 늘 황제권을 강조하며 신민(臣民)인 한인들은 마땅히 순종의 명령을 두려운 마음으로 공손하게 순종할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굳이 순종을 보필하여 근대 교육을 일으키고 산업을 권장할 이유가 없다며 오로지 한국이 서구의 침략을 벗어나 문명국으로 나가는 것을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이런 배경으로 황태자를 일본에 유학시켰으며 통감을 두어 한국의 내정을 보필하게 되었다는 논리를 폈다.”(남순행 연구)

순종의 남순행 행렬의 대열 배치도 일본식이다. 순종이 대열의 앞쪽에 나와 있다. 조선시대 행행에서는 국왕이 대열의 중앙에 위치한 것에 반해 황제가 대열의 선두에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일본인이 순행을 진행한 결과로서 메이지 천황의 순행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남순행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인력거 이용 배치 순서에서, 황족인 의양군(義陽君)은 9번째, 총리대신 이완용은 10번째로 배당받고 있는 반면에 비서관, 서기관, 기사, 통역관(주로 일본인) 등이 앞선 것은 일본인의 권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밝혔다. 특히 순종이 묵는 행재소 내부에 지방특산물을 전시했는데, 이것도 명치 천황이 순행할 때 진행한 방법과 동일한 것으로 해당 지역의 자긍심 고양과 물산 장려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아이디어를 낸지 불과 2~3일 만에 일사천리로 남순행이 준비되고 대구 동성로·북성로 일대의 읍성과 거리가 헐려나갔다. 일부에서는 이런 일들이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역사왜곡일 뿐이다.

최근 순종황제 동상을 두고 철거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순종 어가길은 단순히 동상 문제가 아니라 순행 자체가 일본의 관습이므로 새로운 논의와 점검이 필요하다. 지난 2009년 ‘순종황제 어가길 역사적 고증과 활용 방안 연구’에 책임 연구자로 참여했던 영남불교문화연구원 김재원 원장은 “당시 대구 중구청의 의뢰로 연구한 것은 순종이 갔던 길의 역사적 사실을 밝힌 것 뿐이었다. 제안한 것은 시민회관(현 콘서트하우스)을 역사 전시실로 활용하거나 달성공원에 레이저 영상물 공연을 하는 정도였지 동상 제작은 없었다”며 “실제 동상을 보니 얼굴이나 대례복이 사실과 맞지 않아 연구진의 의도와 달리 과대 미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최근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관련 학자들의 고증을 거쳐 사업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고증에 참여한 학자들은 동상제작 등 지금과 같은 방식을 제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순종이 입은 대례복도 사실은 프러시아 군복인데 일본 군복으로 알려지는 등 어가길 사업 곳곳에서 고증이나 역사인식에 오류가 드러났다. 대구 중구청에 어가길 사업을 옹호해 줄 전문가를 부탁해 찾았지만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70억 원을 들인 사업에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현상 자체가 ‘어두운(dark) 비극’이면서 실소(失笑)를 머금게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는 일제에 굴종한 정신을 미화하는 어가길 조성사업을 비판하고 순종 동상 철거에 나서기로 했다.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는 3.1만세운동이 시작됐고 토요일 수업을 마친 계성학교, 신명학교 여학생, 대구고보, 대구농림 학생들이 서문시장에서 데모를 시작, 일본 경찰의 저지를 뚫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처음 시작할 때 700여 명이던 시위대는 기관총이 설치된 대구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어 달성군청(지금의 대구백화점)에 이르렀을 때 대구헌병대와 보병 18연대 군인들이 총칼로 시위대를 무참하게 진압했다. 당시 주동자인 이만집, 김태련, 백남채, 정재순, 김영서 등은 갖은 고문과 함께 3년에 이르는 옥고를 치렀다.(항일 독립운동사 대구경북편 1991. 정휘창 지음) 이들에 대한 일제의 고문과 잔학행위는 후대에 봐도 살이 떨린다. 대구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다크투어리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면 지금이라도 친일의 잔재를 하루빨리 거둬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이 지역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선조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김종현기자

opl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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