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에서 맹독성 독이 검출 되어 시끌시끌하다. ‘도대체 뭘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하는 일차적인 생각이 들다가 좁은 양계장에서 밤낮으로 계란을 생산해 내는 닭들이 생각난다. 한평생 일만하다 죽어서도 인간에게 육신을 제공하는 고마운 동물들. 이런 소동이 일어날 때면 고기에 대한 갈망을 좀 자제하고 싶다. 채식주의자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를 닦아야 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뜰 앞에서 쨍아가/ 죽었습니다// 과꽃 나무 밑에/ 죽었습니다// 개미들이 장사를/ 지내준다고// 작은개미 앞뒤서서/ 발을 맞추고// 왕개미는 뒤에서/ 딸-랑딸랑// 가을볕이 따뜻이/ 비추이는데// 쨍아 장례 행렬이/ 길게 갑니다“(‘쨍아’ 전문)
천정철 시에 이광익 화가의 그림이 일품인 <쨍아>라는 시 그림책의 전문이다.
‘쨍아’는 잠자리의 서울 사투리라고 한다. 어느 날 잠자리 한 마리가 죽고 개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죽은 잠자리를 떼어내어 옮겨가는 것을 보고 시인은 그것을 장사 지내준다고 하였다. 시에는 가을날 딸랑딸랑 흔드는 상여꾼의 종소리와 상여를 메고 부르는 상여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간단한 시에서 읽은 이미지를 화가는 붓으로 생생히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가을볕의 농도와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연상케하는 과꽃의 한국적이미지가 아름답다. 떼 지은 개미들의 행렬이 모였다 흩어지는 장면도 군무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 가장 고요해 지는 순간은 개미들이 달려들어 잠자리의 육신을 조각내어 가는 장면이다. 화가는 잠자리 조각을 아름답게 색으로 표현하였다.
한 마리의 잠자리가 수 없이 많은 잠자리가 되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또 다른 탄생의 시작이고 만남의 기쁨이다. 잠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로 옮겨져 인연이 되고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장면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끔찍한 일이다. 아이는 죽은 잠자리가 불쌍하다며 개미를 쫒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살육의 현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자연의 섭리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 우리 고기 안 먹으면 안 돼요?” 라고 물었다. “그렇지,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00이는 안 먹을 수 있어?” 잠시 생각하더니 금방 답한다. “아뇨, 고기가 맛있어요.” “그래, 맛있으면 먹으면 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최고의 포식자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잡아먹는 것은 포식자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몇 가지 문제점이 맹독성 계란과 같은 일들을 등장하게 만든다. 일단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다.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또 맛있는 음식으로 손을 뻗으니 더 많은 식재료를 길러야 한다. 감사도 없이 함부로 먹는다. 식탁 위에 올라 온 먹거리 재료와 그것을 키운 분들에 대한 노고를 생각한다면 쌀 한 톨, 고기 한 점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다. 마지막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걸 먹고자 하고 또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니 대량생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쨍아>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의미와 얽히고설킨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먹거리를 돌아보게 하는데 이번 맹독성 계란 사건을 보더라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동물들이 길러질 수 있는 시설의 현대화와 함께 동물인권 법안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뜰 앞에서 쨍아가/ 죽었습니다// 과꽃 나무 밑에/ 죽었습니다// 개미들이 장사를/ 지내준다고// 작은개미 앞뒤서서/ 발을 맞추고// 왕개미는 뒤에서/ 딸-랑딸랑// 가을볕이 따뜻이/ 비추이는데// 쨍아 장례 행렬이/ 길게 갑니다“(‘쨍아’ 전문)
천정철 시에 이광익 화가의 그림이 일품인 <쨍아>라는 시 그림책의 전문이다.
‘쨍아’는 잠자리의 서울 사투리라고 한다. 어느 날 잠자리 한 마리가 죽고 개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죽은 잠자리를 떼어내어 옮겨가는 것을 보고 시인은 그것을 장사 지내준다고 하였다. 시에는 가을날 딸랑딸랑 흔드는 상여꾼의 종소리와 상여를 메고 부르는 상여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간단한 시에서 읽은 이미지를 화가는 붓으로 생생히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가을볕의 농도와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연상케하는 과꽃의 한국적이미지가 아름답다. 떼 지은 개미들의 행렬이 모였다 흩어지는 장면도 군무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 가장 고요해 지는 순간은 개미들이 달려들어 잠자리의 육신을 조각내어 가는 장면이다. 화가는 잠자리 조각을 아름답게 색으로 표현하였다.
한 마리의 잠자리가 수 없이 많은 잠자리가 되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또 다른 탄생의 시작이고 만남의 기쁨이다. 잠자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로 옮겨져 인연이 되고 섞여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장면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끔찍한 일이다. 아이는 죽은 잠자리가 불쌍하다며 개미를 쫒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살육의 현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자연의 섭리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 우리 고기 안 먹으면 안 돼요?” 라고 물었다. “그렇지,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00이는 안 먹을 수 있어?” 잠시 생각하더니 금방 답한다. “아뇨, 고기가 맛있어요.” “그래, 맛있으면 먹으면 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최고의 포식자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잡아먹는 것은 포식자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몇 가지 문제점이 맹독성 계란과 같은 일들을 등장하게 만든다. 일단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다. 배가 부른데도 불구하고 또 맛있는 음식으로 손을 뻗으니 더 많은 식재료를 길러야 한다. 감사도 없이 함부로 먹는다. 식탁 위에 올라 온 먹거리 재료와 그것을 키운 분들에 대한 노고를 생각한다면 쌀 한 톨, 고기 한 점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다. 마지막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걸 먹고자 하고 또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니 대량생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쨍아>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의미와 얽히고설킨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먹거리를 돌아보게 하는데 이번 맹독성 계란 사건을 보더라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동물들이 길러질 수 있는 시설의 현대화와 함께 동물인권 법안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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