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현악 합주곡으로 가공…업그레이드된 감동 전한다
아리랑, 현악 합주곡으로 가공…업그레이드된 감동 전한다
  • 박상협
  • 승인 2017.08.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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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작곡가 김 한 기
2003년 발매 음반 편곡 맡아
세계적 합주단 이무지치와 인연
60돌 월드투어 연주곡 위촉받아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 작곡
악기별 대등한 관계 연주 특징
‘뉴 사운드 오브 대구’ 공연서
한국적 색채 녹여낸 현악곡 선사
김한기-인물
크리스마스적인 감성과 자연으로부터 받는 영감을 받아 작곡하는 김한기는 이무지치 위촉작가 등으로 10여년간 이무지치와 인연을 맺어왔다.
2012년 6월 15일, 이무지치(I Musici) 60주년 월드투어의 마침표를 찍는 예술의 전당 공연에서 청중들은 뜻밖의 감동 하나를 더 누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뽑힌 우리 민요 ‘아리랑’ 선율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실내합주단 이무지치의 연주로 울려 퍼진 것. 곡 제목은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 5분여 휘몰아치는 아리랑의 향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그날 객석에서 이 광경을 뜨겁게 지켜봤던 이가 있었으니,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창원대 교수인 김한기였다. 그는 이무지치 60주년 월드투어에 연주곡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을 헌정한 장본인이다.

“이무지치가 60주년 월드투어 공연을 2년 앞두고 곡을 위촉했다. 어떤 곡을 쓸까 고민하다 우리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결정했다. 이무지치의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공연에 한국의 고유한 선율인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대구 출신 작곡가 김한기가 재해석해 이무지치의 연주로 초연한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을 9월 7일 오후7시30분 대구콘서트홀 그랜드홀에서 다시 만난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 디스커버리 시리즈 ‘뉴 사운드 오브 대구 2017’에 김한기의 곡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이 초청됐다.

김한기의 ‘현악합주를 위한 아리랑’은 주선율을 주로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나머지 악기는 반주를 담당하는 일반적인 주종관계와 달리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높은 음의 악기와 낮은 음의 악기가 주선율에 관한 한 서로 교차하며 순환하는 형식을 취하는 특징을 취한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바이올리니스트와 작곡가를 겸하는 그의 이력으로부터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누구보다 현악기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이무지치는 현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팀이다. 그들의 특성을 최적화하는 곡을 쓰려고 악기별로 대등한 관계로 연주하며 하모니를 이루는 곡을 쓰게 됐다.”

작곡가 김한기와 이무지치와의 인연은 사뭇 깊다. 벌써 14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주기인 10년을 훌쩍 넘긴 인연이고 보면 그를 이무지치의 남자라고 해도 가히 틀리지 않는다. 이무지치와의 첫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금은 고인이 된 이광민 아르카디아(Arcadia) 미국 본사장이 아르카디아와 MBC방송이 이무지치(I Musici)의 ‘한국의 사계(韓國의 四季)’라는 제목의 음반 제작을 기획하며 작,편곡자로 김한기를 지목했다.

이무지치의 ‘한국의 사계(韓國의 四季)’ 음반에 수록될 곡은 총 12곡이었다. 이 사장은 2003년 봄에 김한기에게 12곡 전곡의 편곡을 맡아 달라고 의뢰했다. 그러면서 3개월의 작곡 시간을 제시했다. 어린시절 우상이었던 이무지치의 음반 수록곡을 자신이 작,편곡하게 된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그의 생활리듬으로는 3개월내에 전곡12곡의 편,작곡 작업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율해서 5곡을 쓰게 됐다.

“국내 모 유명출판사에서 출판한 내 악보집이 이곳 저곳에서 사용됐었는데, 이화여대 최한원 교수가 그것을 보고 찬송가 모음곡 음반 제작에 수록될 곡의 편곡을 의뢰했다. 그 최 교수의 녹음현장에 함께 있던 故 이광민 사장의 추천으로 이무지치와 인연이 됐다.”

이렇게 시작된 이무지치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03년 음반 발매 이후에도 이무지치는 짝수 해마다 내한공연을 가지는데, 그때마다 김한기와 인연을 맺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의 내한공연에 김한기에게 곡을 위촉하거나 그의 곡을 연주한 것. 위촉 곡은 2010년 내한공연 연주곡 ‘까치까치 설날은’과 2012년 연주곡 ‘현악합주곡 아리랑’이다.

“2010년 위촉 당시에는 설날을 주제로 한 곡을 위촉받았다. 그래서 전통동요인 ‘까치까치 설날은’을 주제로 한 바이올린협주곡을 썼다. 그리고 2012년 위촉 곡은 협주곡이 아닌 합주곡을 의뢰받아 ‘아리랑’을 편곡했다.”

이무지치는 제1바이올린 3명, 제2바이올린 3명, 비올라 2명, 첼로 2명, 베이스 1명, 그리고 쳄발로 1명 이렇게 모두 12명의 연주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열정적이지만 정제된 스타일, 정교한 테크닉과 역동적인 소리로 현악4중주단 같은 음의 섬세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악오케스트라가 추구하는 웅장한 사운드를 동시에 만들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이무지치가 10여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김한기와 작업한 배경에는 ‘현악’이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즉 현악 연주자 김한기의 작품들은 현악기에 최적화된 곡들이다.

“현악기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빠른 리듬 배치와 음의 능률적 진행이 자연스러운 곡을 쓴다. 연주자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매우 예민한데, 이무지치가 내 곡을 연주하면서 자신들과 음악적 이상이 맞는 작곡자를 발견했다고 반가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한기의 음악적 토양은 아버지로부터 왔다. 그의 아버지는 외국친구로부터 종교음악 원판 레코드를 구입해 즐겨들었고 김한기도 어린시절부터 그 영향을 받고 자랐다. 비록 가정형편이 어려워 셋방살이를 했지만 음악 감상에 관한한 부잣집 아들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그의 사촌들도 피아노 전공자가 3명이나 있을 만큼 음악적인 환경은 풍요로웠다.

시작은 바이올린이었다. 당시 재학 중이었던 대건중,고등학교가 예술학교를 제외하고 인문계에서 유일하게 오케스트라를 운영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바이올린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단박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늦은 나이지만 당시로서는 빠른 시기였다.”

그는 계명대 음악대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연주활동은 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했다. 초기에는 합주단 중심으로 활동했다. 80년에 대학 재학 시기 친우들과 결성한 성5중주단을 모체로 한 대구노바현악합주단을 창단하고 악장을 맡았다. 대구노바현악합주단의 명맥은 대구노바솔로이스트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대에 의해 현재로 이어져오고 있다.

90년대부터는 오케스트라 악장의 생활을 이어갔다. 91년부터 5년 동안의 창원시향 악장 생활을 시작으로 대구시향의 5대 악장, 뒤이어 마산시향 악장도 거쳤다. 학교에도 일찍부터 적을 두어 국립창원대 예술대학장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작곡에 대한 목마름은 일찍부터 발현됐다. 중학교 시기 교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고 화음에 대한 기대감이 강해지면서 화성학 책과 작곡법 책을 구해 독파해 나갔다. 그 책들의 내용은 어린 시절 합창부로 활동할 때 상행하는 ‘솔,라,시,도’와 하행하는 ‘솔,피,파,미’에서 느꼈던, 그리고 4부 합창에서 느꼈던 음의 입체감과 신비감의 열쇠를 풀어줄 수 있는 황금열쇠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을 들은 후부터 ‘세상에 아름다운 그 무엇을 남기는 것’이 과제가 됐다. 그것이 작곡이었다.”

그의 첫 작품인 No.1 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작곡됐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책갈피에 넣어서 납작하게 말린 플라타나스 잎 한 장과 함께 김한기에게 건넨 자작시 ‘슬픈 노래’가 성악곡으로 작곡됐다 이 곡은 음악전문지 월간음악사로 보내졌는데, 그해(1973년) 6월호에 실렸다.

“어차피 서양음악이라는 것이 서양의 문화인데, 우리의 것으로서 세계를 향해 나가야하는 오늘날, ‘한국적, 우리의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방향성을 잡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음계인 ‘도,레,미,솔,라’ 5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학원 졸업 후 연주자에 집중하다, 40대가 되면서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과의 낭만적인 사연으로 작곡된 작품 No.1 이후 지금까지 그는 232곡의 작품을 작,편곡 했고 약 200여곡의 소품을 정리했다.

그가 곡을 쓸 때 영감을 받는 것은 크리스마스와 대자연이다. 그는 오선지 앞에 앉으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소년으로 돌아간다. 기분이 크리스마스의 감성으로 전환되면서 영감이 샘솟는다. 대자연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영감의 대상이다. 그는 그런 정서를 곡에 녹여내며 세상과 음악을 매개자하는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이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크리스마스 절기다. 그 정서가 내 곡에 그대로 담기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곡을 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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