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展 22일까지 키다리갤러리
신철展 22일까지 키다리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17.09.0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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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조차 품을 수 없었던 소녀에게
남아선호 강했던 60~70년대
일찌감치 노동 시작한 누이들
그들의 희생에 위로 보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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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억을 재해석하며 인문학을 펼쳐내는 신철의 전시가 키다리갤러리에서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아들과 딸은 매우 차별적인 삶을 살았다. 이 시기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서 아들을 집안의 대들보이자 희망으로 여겼고, 대들보를 출세시켜야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재물(?)이 된 이들이 딸들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딸들은 일찌감치 공장으로 보내져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려야했고,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고향집으로 보내졌다. 이 돈이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가 됐고, 남은 가족들의 밥이 됐다.

서양화가 신철(64)의 ‘기억풀이’ 연작은 그 시대의 누이나 여동생에 대한 부채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그림은 시대와 가난이 강요한 모성애에 눌려 청춘의 꿈 한번 꾸지 못했던 산업화 시대의 소녀들에게 보내는 위무다.

“노동현장으로 내몰았던 그 시대 소녀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늘 미안했다. 그들에게 위안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화폭에 등장시켰다.”

화폭의 주인공은 소녀다. 단발머리에 볼그스레한 볼 그리고 찢어진 눈은 동화 속 여리고 어여쁜 소녀와는 사뭇 다르지만, 강인하면서도 슬픈 눈망울이 마음을 확 잡아끈다. 푸른 하늘과 뭉개구름, 꽃과 자동차, 배, 그리고 집 등 소녀의 주변에 배치된 사물들과 밝은 색채도 눈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뜻하다는 이야기다.

“본인에게 돈 한 푼 투자하지 못하고 가족을 위해 살았던 이 땅의 누이들에게 내가 수많은 아들들을 대리해 보상하고 싶었다. 화폭 속에서 누이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꽃을 배치하고, 여행을 보내는 콘셉트는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도 감정이입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녹록치 않은 삶과 관계된다. 53년생인 신철은 그의 어머니가 29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신철은 동생만 데리고 도회지에서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와 헤어져 친척집에 맡겨졌다.

“친척집에서 나는 객체였다. 그런 환경속에서 살다보니 주체적이기보다 객체의 입장에서 관계를 보는 눈이 길러졌다. 이땅의 딸들이 내 누이, 내 여동생은 아니지만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그런 배경으로부터 왔다.”

따뜻하고 평온한 소녀와 꽃비가 내리는 밝은 화면. 마냥 즐거울 것 같은 신철의 그림을 보고 까르르 웃는 이들도 있지만, 의외로 눈물을 펑펑 쏟는 여성들이 더러 있다. 그 시대의 누이였고 여동생이었던 소녀가 중장년이 되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흘리는 눈물이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신철의 그림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읽어내고 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이 숨어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끄집어내 사람들이 좀 더 착해지고 아름다워 지기를 바란다.”

신철의 그림은 시각으로 펼쳐놓은 인문학이다. 어느 한 시대일수도 있고, 바로 1분전 기억일수도 있는 과거형을 모티브로 기억을 재생산한다. 이때 개입되는 공통 정서는 휴머니즘이다. 그가 그림의 교육적 요소를 언급했다.

“인문학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이 내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변화하듯 나 역시 인문학적인 그림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삶이 그림을 통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의 첫 전시인 ‘신철’전은 키다리갤러리에서 22일까지. 070-7566-599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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