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탁상행정
공기업의 탁상행정
  • 승인 2017.09.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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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책상머리에 편안하게 앉아 모든 행정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생각하는 머릿 속 방향과 실제 사용자의 요구는 전혀 다른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상행정’은 그 행정의 수요자인 주민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든다.

아주 조그마한 탁상행정을 소개하려 한다. 공기업의 탁상행정 결과물 때문에 지난 몇 달 동안 아주 자주 불편한 일상을 보내야 했다.

몇 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자주 하게 됐다. ‘자전거 통근’이란것이, 막상 실행을 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좀체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자연의 숨결을 벗삼아 느긋이 페달링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은 참 환경친화적이다. 몸을 조금 더 움직여야 하니 물론 운동도 더 된다. 기름이 드는것도, 차를 타고 출근할 때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폭염 속이든, 서슬푸른 동장군의 칼바람 같은 강추위 속에서도 편안한 운전석 시트보다 이왕이면 자전거 안장을 선택하게 됐다. 기름값 걱정에서도 많이 해방됐다.

그러니 출퇴근 길에 꼭 안성맞춤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신천 둔치의 자전거 길은 너무나 소중한 길이다. 실은 신천 둔치의 자전거 길을 벗어나 일반 도로를 이용해 자전거 출퇴근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자전거를 버렸을 것이다. 나름대로 긴 거리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시내 곳곳에 잘 닦아놓았다는 자치단체의 홍보와는 달리 일반도로든 자전거 전용도로든 자전거를 타고 거기로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차량과 뒤섞이고, 행인과 마주치는 수도 없이 이어지는 돌발상황을 맞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편안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그런 자전거 길은 미안하지만, 대구에는 잘 없다.

그래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신천둔치의 이 편안한 자전거길이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이것 참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두 달 반 정도 지났을까? 한 석 달 쯤 전이었을까? 유난히 빨리 닥쳐온 찜통 더위 때문에 여름도 시작되기 전 폭염 비슷한 것을 겪고 있을 즈음이었다.

칠성시장과 신천교 사이의 중간지점 정도 되는 칠성교와 신성교를 잇는 신천둔치 짧은 구간 위에서의 일이다. 일용직 노동자 쯤으로 보이는 한 늙수그레한 사람이 길을 절 반 정도로 갈라놓을 수 있도록 길 한가운데로 줄을 튕기며 그 줄을 기준 삼아 탄력봉을 설치하고 있었다. 탄력봉은 차선을 유도하기 위해 쓰이는 시선유도봉을 말한다. 왜 무단횡단 같은 것을 막으려고 중앙선을 따라 도로 한가운데 줄줄이 박아놓는 그 탄력봉 말이다.

페달을 밟으며 그 공사를 하고있는 쪽으로 다가가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천둔치의 쭉 뻗은 길 중에서 칠성교와 신천교 사이의 짧은 이 길은 하필 별안간 노폭이 좁아져 산책하는 사람들과 라이딩을 하는 자전거가 자주 엉키는 구간이다. 접촉사고도 잦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이 다닐 길과 자전거가 통행해야 할 길을 탄력봉으로 구분해 양분하려는 공사이리라.

그런데 취지는 참 좋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좁은 길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줄을 튕기니 가운데 탄력봉으로 경계선을 긋는다면 사람은 한 쪽으로 교행하며 다닐 수 있겠지만 자전거는 한대가 겨우 빠겨나갈 정도로 도로 폭이 좁아진다. 특히 칠성교 교각 바로 밑 지점은 자전거 한 대도 겨우 빠져나갈 만치 좁아진다. 아다시피 자전거는 달리는 속도가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자전거 길에서 서로 마주 달리는 자전거가 한 대도 빠져나가기 힘들 너비의 길 위에서 마주친다면 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자전거 통행로를 만들어 놓으면 양방향의 자전거들이 이 짧은 지점에서 매우 불편한 정지를 하거나 사람이 통행해야 할 탄력봉 너머 산책로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공사를 하고있는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잠시만요 아저씨. 이 줄은 왜 긋는거죠?” 퉁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 자전거만 다닙니까? 사람도 다녀야지요” 그 말도 맞다. 탄력봉으로 자전거 길과 산책로를 구분하려는 취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좀 다르다. “그렇게 봉을 설치한다면 자전거는 교행을 할 수가 없는데요? 그 좁은 길을 어떻게 양 방향에서 자전거가 서로 빠져나가나요?” 그 노인은 들은체도 않는다. 마침 그 길로 자전거를 타고가다 공사 현장을 본 다른 사람이 자전거 헬멧을 쓴 채 손을 내저으며 허겁지겁 다가온다. “아저씨 이거 이렇게 금 그으면 안돼요. 사고가 나요 사고. 이 금은 누가 이렇게 그은거예요?” 그 노인이 대답한다. “제가 그었어요. 자전거만 다니나요? 이래야 사람도 다니지요”

너무 답답한 상황이 되었다. “아저씨 한테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그 노인은 느긋하게 대답한다. “나는 몰라요. 시설공단에 물어보세요” 황당하다. 시키니 하는건데, 생각하고말고가 어딨냐는 대답이다. 그 날 그 곳에 시설관리공단의 직원은 없었고, 그렇게 그어진 탄력봉 중앙선 때문에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 구간에서는 늘 긴장을 총동원 해 돌발상황에 대비해가며 자전거를 타게됐다. 때로 마주오는 청소년 집단 라이더를 피하려 한없이 엉거주춤 몸을 사리며 서있기도 하고 아뿔싸를 외치며 갑작스레 사람이 다니는 산책로로 급하게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길을 이렇게 만들도록 구상한 담당자는 필시 현장에 한 번 와보지도, 자전거를 타보지도 않았을 것이란 확신을 무럭무럭 키운다. 어쨌든 탁상행정은 모두를 참 불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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