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서영옥이 만난 작가
  • 승인 2017.09.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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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2
현대 서예가 박세호




“혹 삼손인가요?” 하고 농담을 한 것은 긴 머리에 콧수염이 비범했기 때문이다. 긴 머리카락이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방편이라고 하던 작가는 바로 서예가 초람(初藍) 박세호이다. 세상의 편견은 도처에 숨어있고 작가의 삶은 종종 왜곡된 시선이 불편하다.

박세호는 9월1일부터 30일까지 김해 미안갤러리에서 초대전 중이다. 16회 개인전이다. 전시장으로 달려간 것은 지면으로 본 묵향을 가까이서 음미하고 싶어서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꾸준했던 서예 외길 30년이 자신감에 차있다. 필압의 강약과 완급이 조절된 붓의 결이 박세호의 예술세계를 대변한다. 작업논리는 탄탄하다. 47세라는 나이의 행간에서 숙성된 내공과 삶의 질곡도 더불어 읽혀진다.

박세호는 문자의 중이성을 서예로 표출하는 작가이다. 30년간 글씨를 익힌 다음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은 그가 세운 원칙이다. 하여 감정이 이입된 회화적인 글씨마저 서예라고 단언한다.

초람이 고수해온 서예가로서의 책무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거침없는 감정을 필묵으로 녹여내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서(書)를 넘어선 미(美)에 대한 고찰은 그 다음 일이다. 함몰되어가는 서예의 입지를 재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 지금 전통이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서예도 예외는 아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 빛나는 전통을 잇고 새롭게 그 맥을 유지해가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박세호 작가가 조형미와 예술미를 부여한 현대서예를 20년간 연구해온 이유이다. 그가 추구하는 현대서예는 서체를 중요시한 보수적인 서단이 외면하던 필법이다. 급진적인 필법만큼 거부당했던 세월은 치열한 습작과 고독과도 비례한다.

박세호는 현대서예가 2세대이다. 40여 년 전에 1세대가 그 터를 닦았으니 초람은 후발주자인 셈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서예 전공자로서는 1세대가 된다. 이러한 박세호의 현대서예는 온몸의 움직임을 수반한다. 명상이나 수양 같은 절제가 기본인 전통서법이나 단정한 궁서체와는 달리 행위자체에 무게를 두는 필법이다. 하여 다소 거칠다. 역동성도 강하게 느껴진다.

작업의 재료는 문방사우에 붉은색 물감 하나를 더 추가했다. 선조들이 즐겨 사용하던 재료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현대서예는 매체의 범위가 넓은 현대미술과도 같은 맥락이지만 박세호는 재료에 기대지는 않는다. 대신 행위자체로 차별화를 획득한다.

이를테면 비(雨)자를 쓰기 위해 비오는 땅바닥에 화선지를 펼친다거나 거친 바위 표면에 종이를 덮는다. 이때 잉태된 글자는 천(天)과 지(地)와 인(人)이 합일된 경험적인 서체이다. 자연 위에 바로 긋는 필획은 자연(물, 불, 공기, 흙)의 생명력과 직접적인 교감 다름 아니다. 갑골문자를 이해하기 위해 뼈에 서각을 하는 등, 무모할 것만 같은 행위를 그는 작품의 제작경로로 삼는다. 더하여 구도와의 밀착감을 유지하기 위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붓끝을 주시한다.

일련의 노력들이 <넋>자와 <壽목숨>, <心마음>으로 드러났다. 만해 한용운의 시를 토대로 한 <두견새>는 함축적인 시의 의미처럼 피를 토하듯 먹물이 토해낸 글자이다. 얼이 스민 <넋>자나 혼이 담긴 <壽수>자도 <두견새>에 버금가는 무게감이다. <반야심경>과 <音소리>은 신앙(또는 무속)에 닿아있고 <玄현>은 어머니의 다른 표현이다.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 삼강오륜과 음양오행의 이치를 머금은 상형문자는 글자 자체가 곧 그림이자 의미이다. 작가가 가끔 큰 붓에 온 몸의 기운을 실어 담는 이유이다.

<걸어가라>나 <수여산壽如山>처럼 간절함이 담긴 글자나 <복록수福祿壽>는 곡절 많은 변방작가 박세호의 염원이 서린 듯하다. 이러한 표현에서 서예가 박세호의 생득적인 기운이 감지된다. 헛헛한 현실에 타협하기보다 개척과 도전을 실천한 용기가 현재의 새로운 물고를 튼 듯하다. 꾸준한 신념과 투지에 더한 노력의 결실이다.

관심의 빈도는 이해로 연결된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처럼 작가에겐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 천군만마보다 귀할 때가 있다.

이번 전시기간동안 박세호는 다음 작품의 윤곽을 잡았다고 한다. 전시장은 가끔 번민과 고통이 새로운 계획으로 바뀌는 마법을 발휘한다. 아마도 마법의 자양분은 이웃의 진심어린 관심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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