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서영옥이 만난 작가
  • 승인 2017.10.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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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김재경




먼발치일수록 흐릿한 것은 자연경관만일까.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귀 기울일 때 선명해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도 만나게 된다. 작가 김재경의 작품이 그렇다. 김재경은 걸러진 심상에 다양한 색의 옷을 입힌다. 고안한 캐릭터(사람, 강아지, 새, 고양이 등)는 밝은 색 옷을 입고 유유히 산책을 한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도보하는 캐릭터가 느린 심장박동과 같은 속도로 걷는다. 방향은 다르지만 서로 조화로운 캐릭터들이 실공간과 가상공간을 괘념(掛念)치 않고 바닥과 벽면, 공중을 부유한다. 이런 산책은 느린 속도감이 핵심요소이다. 바로 김재경의 작품 <산책>이다.

작가 김재경의 작업실 한 벽면에는 작업일지가 나란하다. 먼 미래에 작가가 될 꿈을 예단한 사람의 성실은 잘 정리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꼼꼼한 기록은 다독과 다상량으로 내면을 다져온 사람의 흔적답게 체계적이다. 덕분에 근작인 <산책>에만 그쳤을 관심이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김재경이 작가로 발돋음 하던 20여 년 전부터 그의 일대기를 조망할만한 단서를 만난 것은 덤으로 찾아온 행운이다. 기록은 개인의 창작도 역사성을 띠고 있음을 증명한다. 작가로 달려온 그의 인생여정을 압축하면 이렇다.

1990년대 초 서양화를 전공한 김재경은 다양한 재료의 실험과 테크닉 습득에 충실한 학생이었다. 90년 초부터 말까지는 줄곧 실경을 그리거나 그린 풍경을 남기고 지우는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실험했다. 1998~2009년까지 약 10년은 본격적으로 심상표현에 몰두하며 종이에 잉크 → 캔버스에 잉크 →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후 잉크와 페인팅의 결합 등, 젓가락 끝에 묻은 잉크가 200호 캔버스를 가득 메우던 예술노동은 이 시기에 시도한 독특한 작업방식이다. 선의 집적과 동시에 진행된 면 분할 작업은 기본조형탐색에 더한 감정(행복, 슬픔, 그리움, 쓸쓸함)이입의 결과물이다.

2000년 첫 개인전과 약간의 틈을 둔 2·3회 개인전(2005년)은 다음 행보의 발판인 셈이다.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2009-2010)후 전주 교동아트스튜디오 레지던시 참여(2011년)에서 경험한 현실의 환기는 작업에 전환점과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다. 현재진행중인 작업 <산책>의 출발지도 가창창작스튜디오였고 2008년에 중단했던 캔버스 작업을 다시 펼치면서 경쾌함을 갖추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산책>은 다양한 공간을 해석한 설치와 영상협업 등, 그 범위를 넓혀간다. 더하여 캔버스 작업 중 일부 이미지는 아트콜라보 제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이라 해도 삶을 떠나 있을 순 없다. 미묘한 삶의 간극을 다 알 순 없지만 작품은 자기 체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형예술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내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김재경에게는 그것(비가시적인 것)이 산책(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책>은 지난 작업들과 일관된다고 할 순 없으나 연계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책>의 범주에도 심상은 개입되고, 초기작부터 지금까지‘심상’이라는 카테고리는 작업 전반의 축을 이룬다.

산책은‘일상의 여유와 즐거운 감정, 자연과의 만남’이면서 “또 다른 의미로는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정신의 자유, 그리고 내면과의 만남”이라는 것이 김재경의 기본 생각이다. <산책>을 이루는 개개요소들이 일면 상징이나 기호체계일 가능성을 열어두는 대목이다. 하여 작품 이해에 ‘모든 상징은 한 측면에서는 의식적인 것을 지시하고 다른 한 측면에서는 무의식적인 것을 환기한다.’고 한 융의 심리학이론을 바탕에 두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대척점도 배제할 순 없다.

찬찬히 들여다 볼 때 진가를 알게 되는‘풀꽃(나태주의 시)’은 스쳐보면 지나칠 수 있는 미미한 존재에 눈 맞출 것을 권유한다. 김재경의 <산책>도‘풀꽃’처럼 천천히 걸음의 속도를 맞출 때 감흥도 깊다. 종이인형놀이 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도 맞닿는 케릭터가 실공간의 주체인 것과, 공간을 점유한 캐릭터의 배치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탄생되는 것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 이다. 분명한 것은 김재경의 <산책>이 주는 잔잔하고 맑은 느낌이 단순한 산책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시처럼 말갛게 걸러진 내면을 예술의 중심에 둔 작가 김재경의 <산책>에 마음과 눈의 속도를 맞추게 되는 이유이다.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세계는 이제 낯설어졌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여야했다. 보다 더 가벼워지기를…(작업노트 중)” 소망하는 김재경의 새로운 세계가 <산책>과 더불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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