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누가 귀머거리인가?
데스크칼럼-누가 귀머거리인가?
  • 승인 2017.10.1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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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경북본부장)

여름휴가보다도 긴 추석 연휴. 정부가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휴일을 열흘간 이어지게 하고, 이에 화답해 도로공사는 추석 전후 3일간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줬다. 또 지자체들은 주요관광지와 공용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을 선보이며 곳곳에서 농산물 특판행사도 열었다.

덕분에 공항과 역, 터미널마다 인파로 넘쳐났고, 관광지와 명소에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음식점과 동네가게들도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필자도 고향인 경주에서 추석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예전 같으면 고향 다녀오는데 급급했지만, 이번에는 느긋하게 명절을 보내고 가족, 친지, 친구들을 두루 만났다.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모처럼 생업을 떠나 유유자적하며, 미뤄뒀던 가족과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던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정치하는 사람에게도 이번 연휴는 절호의 기회였다. 국회도 열리지 않고 관광서도 문을 닫았다. 없는 시간 쪼개 눈 도장을 찍어야하는 각 당 행사도 없었다.

정치인으로서 이 만큼 시간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싶다. 국민들과 함께 연휴를 즐기다보면 저절로 민심이 닿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땠는가? 연휴 기간 정치인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고작 당 차원에서 용산역으로 서울역으로 나가서 어깨띠 두르고 ‘고향 잘 다녀오라’는 의례적인 고개 숙이기가 전부였다. 지역 정치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 놓고서는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민심을 정확히 읽었다며 하나같이 큰소리를 쳐댔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께서 민주당에 전달해 주신 민심의 핵심은 제대로 적폐를 청산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이에 대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긴 연휴기간 동안 민심을 두루 들어봤다. 지금 전 대통령에 이어 전전대통령까지 정치보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 당에서는 정치보복대책특위를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역시 보수정당인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도 ”과거와 이렇게 싸우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언제 앞을 보고 가느냐는 걱정이 많았다“면서 정부 여당을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손금주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추석을 느낄 여유도 없을 만큼 외교안보 라인의 무능력함과 잡음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고 우려했다.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는 ”추석 민심의 결론은 철저한 적폐청산과 개혁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아전인수격인 정치권의 말장난은 ‘다 아니 올시다’다. 추석민심은 잘못 파악해도 한참을 잘못 파악했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고, 가장 걱정한 부분이 정치였다.

고향 동네 한 어르신은 ‘잘 계셨느냐’는 안부에 “도대체가 시집갈 생각을 안 한다.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직장 일이 뭐가 그래 바쁜지 알 수가 없다”며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둘째딸 걱정부터 꺼내셨다. 또. 몇 년 만에 만난 고교동창 놈은 3년째 공무원시험 공부만 하고 있는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해 죽겠다며 장황하게 푸념을 늘어놨다.

또 한 초등학교 여자친구는 서른을 넘긴 아들을 두고 “벌써 면접만 열 번째가 넘었는데, 이제는 지친다. 취직을 해야 장가라도 보낼 텐데, 남들 보기가 부끄럽다”며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 사과농사에 축산까지 병행하다 보니 도회지 생활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익히 소문이 자자한 친구다. 그런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미FTA를 재협상하면 농산물이 제일 피해를 많이 본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보문단지에서 식당을 하는 누님 친구 분도 장사가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종업원을 줄여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목하 고민 중에 있었다.

흔들리는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도 많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모 선배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자 일본은 대피훈련을 하고 난리법석인데, 정작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이게 나라냐?”고 열변을 토했다.

다들 사연도 많았고 걱정도 다양했다. 그런 와중에도 공통된 불만은 정치로 귀결됐다. 한목소리로 “요즘 뉴스 보기 싫다”고 했다. 민생은 뒷전이고 적폐청산이니 정치보복이니 싸움만 하는 정치에 뭐를 바라겠느냐는 것이다. 민초들이 느낀 추석 민심과 정치권이 파악한 추석 민심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다. 내가 귀머거리인지, 정치권이 귀머거리인지, 분명 한쪽은 귀머거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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